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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길 할머니, 尹도 못알아봐...자발적 기부 터무니없다"

중앙일보

입력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검찰이 적용한 혐의 중 유독 '준사기' 혐의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치매 상태에서 7900여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한 길원옥(92) 할머니의 가족들은 15일 "윤 의원의 계속되는 자발적 기부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 의원과 정의연이 준사기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건 법원에서 최종 인정될 경우 자신들의 정당성과 도덕성이 치명타를 입을 것이란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준사기죄' 극구 부인하는 윤미향·정의연

검찰, 윤 의원에게 '준사기' 혐의 적용 

검찰은 윤 의원을 불구속기소 하면서 준사기 혐의를 적용한 것은 윤 의원이 숨진 마포쉼터 소장과 공모해 심신장애를 앓고 있는 길 할머니한테 기부 또는 증여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먼저 윤 의원은 지난 2017년 11월 치매를 앓는 길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그가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 중 5000만원을 정의연 측에 기부하게 했다. 또 그 무렵부터 올해 1월까지 9회에 걸쳐 2920만원을 추가로 기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길 할머니가 2017년11월 22일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은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금 대신 국민 성금으로 마련된 돈이다. 하지만 길 할머니의 통장으로 당일 오전 10시 52분 입금된 상금은 1시간여 만인 11시 56분에 ^500만원 ^5000만원 ^2000만원 ^2500만원 순으로 다시 빠져나갔다. 당시 길 할머니의 통장을 관리하던 정의연은 "500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했고 1000만원은 양아들에게 지급됐다"고만 설명했다.

며느리, 어머니는 2015년부터 치매약 복용  

길 할머니 양아들의 부인 조모씨는 이 외에도 "길 할머니의 통장으로 정부와 서울시에서 매달 350만원가량의 보조금이 입금됐으나 이 돈의 일부가 다른 계좌로 빠져나갔다"고 지난 6월 폭로했다. 조씨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2015년부터 치매 관련 신경과 약을 복용해왔다. 검찰 역시 길 할머니가 500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한 2017년 11월은 물론 그 이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의료기록ㆍ의료 관계자 의견 등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길 할머니가 오랜 기간 정상적인 인지 및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윤 의원·정의연, "길 할머니 자발적 기부"

윤 의원은 검찰의 기소 직후 늦은 밤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길 할머니의 영상 3개를 공유했다. 2017년부터 올해 촬영한 영상들로, 주로 길 할머니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이 담겼다. 윤 의원은 "왜 갑자기 길 할머니 영상들을 공유하냐고? 이미 올라와 있던 영상들"이라며 "할머니의 평화인권운동가로서의 당당하고 멋진 삶이 검찰에 의해 '치매'로 부정당하는 것을 겪으며 제 벗들과 함께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싶어 올린다"고 했다.

정의연 역시 15일 입장문을 내고 "피해 생존자의 숭고한 행위를 '치매노인'의 행동으로 치부한 점에 대해서는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이어 "검찰이 억지 기소, 끼워 맞추기식 기소를 감행했다"며 "스스로 나서서 해명하기 어려운 사자(死者)에게까지 공모죄를 덮어씌웠다"고 주장했다.

며느리, "윤 의원 주장 납득할 수 없어"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지난해 8월 14일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1400차 정기 수요집회에 길원옥 할머니가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지난해 8월 14일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1400차 정기 수요집회에 길원옥 할머니가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이에대해 길 할머니 가족들은 윤 의원이 계속해서 '자발적 기부'를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길 할머니 양아들의 부인인 조씨는 "기부금을 모금해 어르신에게 지급하고 그 돈을 다시 정의연에 기부하도록 계획했다. 참 이상한 기부"라며 "정당한 기부라면 가족들에게도 문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또 "어머님은 현재 윤 의원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 능력이 떨어졌으며 마포쉼터에서 함께 생활하던 고 손 소장의 사망 사실도 잊은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어머님 편에서는 (기억을 못 하시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다 알면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말했다. 조씨는 "용서는 상대가 잘못을 인정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래도 다행인 건 정의연 사태가 덮이지 않고 기소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준사기죄 인정되면 정의연 도덕적 타격"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한 준사기 혐의(형법 제348조)는 사람의 심신장애 등을 이용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했을 때 적용된다. 제삼자로 하여금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했을 때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윤 의원에게 준사기 혐의가 인정된다면 그가 쌓아온 30년 일본군 위안부 운동 이력에 결정적 흠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위안부 할머니를 돕기는커녕 할머니들을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서울변호사협회장 출신인 김한규 변호사는 "사기죄보다 준사기죄가 죄질이 더 좋지 않기 때문에 비난 가능성이 더 크다"며 "명망 있던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도덕적으로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재판에서 유죄가 나온다면 시민단체가 보호할 사람은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던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 것"이라며 "이에 적극적인 해명을 내놓고 있는 것 같다"고 봤다.

권혜림·채혜선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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