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車블랙박스에 담긴 “아, 야” 비명···혀 잘린 남성 ‘성추행 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경찰청 전경.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경찰청 전경.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 황령산에 주차된 차 안에서 20대 여성이 30대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을 두고 정당방위인지 과잉방어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

30대 남성 혀 3㎝ 절단된 채 중상해로 20대 여성 고소 #20대 여성 “강제추행하려해 방어한 것” 맞고소 #부산경찰 강간치상 사건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

 여성은 강제추행하려는 남성을 상대로 한 정당방어를 주장하고, 남성은 과잉방어로 인한 중상해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사건을 접수한 부산지방경찰청은 강간치상 혐의 성립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행차 부산을 찾은 A씨는 이날 저녁 서면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는 다음날인 19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A씨와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서면역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술에 취한 A씨는 숙소에 돌아가지 못한 채 서면의 한 골목 길가에 앉아 졸았다고 한다. 그러자 B씨가 다가와 10분가량 말을 걸었다. A씨와 B씨는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A씨가 제대로 답을 못하자 B씨는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가 10분쯤 뒤 다시 돌아와 A씨를 자신의 차량에 태웠다.

 B씨는 A씨를 숙소 방향과 정반대인 부산 남구에 있는 황령산 등산로 쪽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황령산 등산로에 차를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일 오전 9시 25분쯤 A씨가 B씨의 혀를 깨물어 혀끝 3㎝가량이 절단됐다.

 B씨는 곧바로 A씨를 데리고 인근 지구대로 가서 중상해 사건으로 고소했다. A씨는 지난 8월 6일 B씨를 강간치상으로 맞고소했다. 저항 과정에서 몸에 상처가 남았다며 사진도 함께 제출했다.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야경. 황령산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는 관련이 없다. [사진 부산관광공사]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야경. 황령산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는 관련이 없다. [사진 부산관광공사]

 경찰이 증거물을 요청하자 B씨는 자신의 차량에 있는 블랙박스를 제출했다. 블랙박스에는 음성만 담겨 있었는데 A씨가 ‘아’, ‘야’라고 외치는 소리와 혀가 물린 B씨의 비명이 담겼다고 한다.

 이를 두고 A씨는 자신을 성추행하려는 B씨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나온 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B씨는 A씨와 동의 하에 키스하다 갑자기 A씨가 혀를 깨물었다고 맞서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와 B씨의 진술이 엇갈려 블랙박스 영상을 토대로 각종 증거를 조사하고 있다”며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중상해 사건은 부산 남부경찰서 형사과에서, 강간치상 사건은 부산경찰청 여성·청소년 수사계에서 수사하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B씨가 술에 취한 A씨를 차에 태워 황령산으로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A씨 의사와 무관한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A, B씨를 상대로 수차례 조사를 진행했다”며 “이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한 뒤 정당방위인지 과잉방어인지를 최종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56년 전 성폭력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실형을 선고 받은 최모씨(74)가 지난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다. 뉴스1

56년 전 성폭력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실형을 선고 받은 최모씨(74)가 지난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다. 뉴스1

 부산에서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70대 여성 최모씨가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최씨는 18세이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 혀를 깨물어 1.5㎝ 자른 혐의(중상해)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미투 움직임에 용기를 얻었다는 최씨는 한국여성의전화를 찾았고 지난 5월 재심을 청구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