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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내 몸속의 면역과 감염전쟁

중앙일보

입력

미국에 대한 테러사건 이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생물의 세계에서도 매일 전쟁이 벌어진다. 특히 우리 몸을 방어하는 면역체계와 감염성 바이러스의 관계는 인간들이 벌이는 전쟁판을 쏙 빼닮았다.

면역전선의 키워드는 적 식별(인식), 대규모 동원(증폭), 지휘 전달체계 가동(조절)이다.

우리 몸의 곳곳에는 물리적 방어진이 구축돼 있다. 이것들은 침투하는 적군을 막는 각종 장애물인데 피부.점막 등이 이에 속한다.

상처가 난다는 것은 이러한 방어물이 무너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염증을 감염의 부작용 정도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면역전선을 가동시키는 중요한 반응이다.

상처가 생겨 감염되면 주변 혈관으로 혈액이 많이 흐르고 각종 백혈구가 상처 부위로 이동하며 국지전이 벌어진다.

전투지역으로 길이 뚫리고 군인들이 즉각 배치되는 것과 같다. 고름은 사망자들인데 전사한 군인은(백혈구 등) 물론 죄 없는 양민(주변세포)도 포함돼 있다.

포위망을 벗어난 바이러스는 적절한 장소로 이동하고 번식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감기에 걸려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나는 것은 전면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일부 바이러스는 어디론가 숨어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동원되는 전투요원들은 크게 '상비군' 과 '대응군' 으로 나뉜다. 상비군은 1차 방어전선을 형성하는데 바이러스.세균.감염세포를 공격하는 인터페론.보체.NK세포.대식세포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최전선에 배치돼 철통경비를 하는 군인들 같이 적이 포착되면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이에 반해 대응군은 피아(彼我)식별은 물론 특정 적군을 '기억' 해두었다가 이들이 다시 침투할 때는 수천, 수만 배로 증폭해 엄청난 병력으로 공격을 가한다.

우리 몸의 T임파구와 B임파구가 대표적인 대응군이다. 이들의 기억능력을 이용한 것이 백신이다. 백신은 모의전투의 적군에 해당한다.

가상 적군을 우리 인체에 투입시키면 T 혹은 B 임파구가 이를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실제 적군이 왔을 때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훈련 잘 받은 군인이 잘 싸우는 것과 같다.

상비군과 대응군 사이에는 매우 정교한 정보전달 체계가 확립돼 있다. 특히 T임파구는 방어체계의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기능이 다른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TH라 불리는 세포는 총사령부격에 해당해 많은 종류의 면역세포들에 행동지침을 구체적으로 명령한다.

통신은 주로 사이토카인이라 불리는 단백질을 통해 이뤄진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는 TH를 감염시켜 신분을 위장하고 고정간첩으로 숨어있다가 언젠가 면역기능을 마비시킨다.

피아 식별을 잘못해 사고 내는 경우도 많다. 면역체계는 외부의 적만을 가려내 제거해야 하는데 실수로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을 비롯한 자가면역질환은 이래서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암은 자생적으로 발생한 내부의 적인데 경계망이 뚫리면서 성장해간다.

면역의 본질이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할 때 인간은 이에 맞춰 폭력적으로 진화했는지 모르겠다.

고도의 사회성을 가진 인간에게는 평화 공존만이 생존의 길이라는 현실적 계산이 이러한 생물학적 폭력성을 압도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김선영 서울대 교수 · 유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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