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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틀린 한은 직원 책임지란 與의원, 대뜸 이주열엔 "반성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8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한국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의 업무보고가 열렸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한 듯 이주열 한은 총재에게 질문이 집중됐다. 여야 의원들은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 기조와 향후 추진 방향을 물었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엄중한 시기인 만큼 한은이 중심을 잘 잡아달라는 당부도 많았다. 유독 눈길을 끈 의원이 있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두 사람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갔다.

경제성장률을 오차 없이 예측할 수 있을까. 셔터스톡

경제성장률을 오차 없이 예측할 수 있을까. 셔터스톡

양: 20년 동안 한은 경제성장률 전망과 실적을 분석했는데 단 한번도 실제 경제성장률을 맞춘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전문가고, 최고의 엘리트가 모여 있고, 인건비는 거의 9000만원 이상을 받는 한은 직원들은 왜 20년 동안 한번도 맞추지 못하죠?
이: 전망을 할 때는 그 시점에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 모든 분석 수단을 활용해서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거 10~20년 전 보면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너무 많이 터졌고, 최근 코로나도 그렇고, 글로벌 위기라든가 전망 당시에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하지 않은 충격들이…
양: 불확실적인 그런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맞추지 못할 상황도 있을 거라는 인정을 합니다만. 그렇지 않을 때도 전망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다는 걸 지적하는 겁니다. (중략) 다양한 변수를 동원하지 않는 전망치가 있습니까? 어느 기관이나 마찬가지죠. 그런데 한국은행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다는 걸 지적하는 거예요.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전망은 어디까지나 전망 전의 정보를 가지고 한다. 경제는 멈춰있지 않다. 변수는 계속 등장하고, 흐름도 바뀐다. 예컨대 지난해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예상하고,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거라고 전망했다면 당연히 그 시점엔 ‘미친 소리’란 얘길 들었을 터다.

코로나19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이슈가 아니어도 크고 작은 사건이 수시로 터진다. 지난해만 돌아봐도 미·중 무역갈등의 진행 상황이 월 단위로 한국 경제를 흔들었다. 반일 이슈도 터졌다. 올해를 본다면 연초부터 상상 이상의 저유가가 찾아왔고, 여름엔 길어진 장마가 발목을 잡았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심지어 시점까지) 알 수 없는데 연초 전망과 연말 실적을 일치시키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한은뿐만 아니라 민간 연구기관,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내놓은 연초 성장률 전망치는 대부분 틀린다.

오차 없는 전망은 예언의 영역 

경제 전망은 현재 상황을 분석해 향후 경제 흐름을 예상하고, 국민과 기업, 정부 각 경제 주체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행위다. 수치는 일부분이다. 전망 이후 여건이 바뀌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그래서 한은도 1년에 4번 경제전망을 발표한다. 어떤 충격이 발생했을 때 그에 맞춰 전망 경로를 적절히 바꾸거나, 오류를 수정하는 것도 전망 작업의 일환이고, 어쩌면 숫자 맞추기보다 더 중요한 역량이다. 이런 과정에서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제안까지 길어내면 손색없는 전망이다. 성장률 전망치가 틀렸다고 나쁜 전망인 건 아니란 얘기다.

더 어이없는 발언은 질의 후반에 나왔다. 양 의원은 “앞으로 경제 상황이 위중해질 텐데 큰 오차율을 계속적으로 낸다고 하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에게 “이 경제 전망치를 잘못 예측하는 담당자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을 의향이 있느냐”고 말했다.

오차 없는 전망이란 예언의 영역이다. 숫자를 맞추면 칭찬할 수는 있겠으나 틀렸다고 혼낼 일은 당연히 아니다. 양 의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망이 틀렸다고 징계하고, 책임지라고 하면 어느 직원이 전망 업무를 담당하겠나?

압권은 괴리율 발생 원인을 설명하려는 이 총재의 말을 끊고 “반성하세요”라고 소리친 대목이었다. 2016년 ‘사퇴하세요’ 한 마디로 국민적 스타가 됐던 모 의원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8월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8월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임위에서 피감기관장 불러서 소리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국회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차근차근 설명하고, 상대방에게 답변할 기회를 충분히 주는 의원도 많다. 왜 제대로 맞춘 적이 없냐고 따지고 싶으면 왜 오차가 발생하는지 들을 준비도 돼 있어야 했다. 면박을 주고, 대뜸 사과 요구부터 한다고 국민이 잘했다고 손뼉 치지 않는다. 그건 ‘사이다’가 아니다. 이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면 이 정도 발언이 충분했을 것이다. “한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위기 상황인 만큼 좀 더 정밀한 전망을 기대한다.” 평범한 말로도 얼마든지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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