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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 선택” 올게 왔다···‘인도·태평양 나토’ 꺼낸 비건

중앙일보

입력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8월 31일 '미국·인도 전략적 동반자 포럼'에서 "인도 ·태평양 지역에도 나토와 같은 강력한 다자기구를 설립하자는 요청이 분명히 있다"며 "미·일·호주·인도 4국(쿼드)에서 시작해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8월 31일 '미국·인도 전략적 동반자 포럼'에서 "인도 ·태평양 지역에도 나토와 같은 강력한 다자기구를 설립하자는 요청이 분명히 있다"며 "미·일·호주·인도 4국(쿼드)에서 시작해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장관이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인도·태평양판 다자안보기구를 수립하는 구상을 공개했다. 미·중 신냉전 시대에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봉쇄하려는 게 주목적이다.

"미·일·호주·인도 4국이 시작해 확대할 것" #폼페이오 "4국 플러스 한국이 파트너될 것" #외교부 "요청받은 적도, 논의한 적도 없다" #美 "함께 않는 韓에 핵우산 걷어야" 주장도

외교부는 "참여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해외미군 재편 계획과 맞물려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으로선 미·중 사이 전략적 선택을 하라는 요청인 셈이다.

인도·태평양 집단안보기구 구상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미·인도 전략적 동반자 포럼'에서 미국·인도·일본·호주가 참여하는 기존 '4국 안보 대화'(쿼드)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더한 '쿼드 플러스'를 공식 기구화하려는 시도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공개됐다.

비건 부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나토와 유럽연합 같은 강력한 다자기구가 없기 때문에 확실히 그런 요청이 있다"며 "쿼드 4개국으로 작게 출발해 회원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토는 2차 대전 직후 상대적으로 적은 12개 회원국에서 현재 27개국으로 확대했다고 예로 들었다.

그는 "쿼드는 배타적이지 않다"면서 지난 3월부터 한국 등 3개국을 더해 7개국이 매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위협에 대응하는 차관회의를 열고 있다고도 소개했다.

비건 부장관은 "트럼프 2기 또는 다른 대통령 1기 정부가 탐색해 볼 매우 큰 가치가 있는 일이 될 것"이라며 수립 시점은 미 대선 이후 차기 정부 과제로 돌렸다. 기구의 목적을 "오로지 중국을 봉쇄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한정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할 것"이라며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어젠다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토처럼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집단안보기구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인도·호주·일본 외에 한국이 미국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인도의 남중국해 군함 파견에 "인도·호주·일본과 한국의 친구들이 자신의 국민과 국가에 대한 중국의 위험을 알게 됐다"며 "그들이 모든 전선에서 이를 물리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인도·일본·호주 '4국 안보대화'(쿼드)는 매년 말라바르 훈련을 실시한다. 사진은 2017년 벵갈만에서 말라바르 훈련에 참여한 미 항공모함 니미츠함(맨 왼쪽)과 일본 자위대 및 인도 해군. [미 해군 제공]

미국·인도·일본·호주 '4국 안보대화'(쿼드)는 매년 말라바르 훈련을 실시한다. 사진은 2017년 벵갈만에서 말라바르 훈련에 참여한 미 항공모함 니미츠함(맨 왼쪽)과 일본 자위대 및 인도 해군. [미 해군 제공]

하지만 외교부는 2일 "미국 측으로부터 '쿼드 플러스'(안보기구 구상)에 관한 제안을 받거나 참여를 요청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이날 마침 최종건 1차관과 비건 부장관이 상견례를 겸한 통화를 했지만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설명하면서다. 앞서 대중국 경제 봉쇄용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을 공개했을 때와 비슷한 입장이다.

비공식 안보회의체인 쿼드에도 참여하지 않는 정부로선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삼는 지역 안보기구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내에선 전략적으로 함께하지 않는 한국을 핵전쟁 위협까지 감수하며 계속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정부학과 제니퍼 린드와 대릴 프레스 교수는 내셔널 인터레스트 지에 "조 바이든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겠지만 이게 미국을 위한 최선인가"라는 제목으로 공동 기고를 했다.

이들은 "북한은 유사시 미 본토를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전략적 이유가 있으며 미국이 생존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 한국이 가치 있는 동맹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냉전 동안 미국은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그 끔찍한 위험을 떠안았지만, 현재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게 타당한지는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더 가치 있는 동맹이 되려고 일본과 협력해 쿼드에 참여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중국을 맞상대하는 중대한 지역 임무는 함께하지 않고 중간적 입장을 취하면서 한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미국이 위험을 감수하길 기대하는 현 상황은 미국민을 설득하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지 않고 '중립'을 외치는 한국에 더는 핵우산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며 바이든에게 한·미동맹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대사는 "미국의 다자안보기구 구상 같은 전략적 움직임은 객관적 현실"이라며 "회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치밀하게 선택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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