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한 자국엔 성형까지… 나무병원 활약 눈부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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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의 수호신을 살려주세요. "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나무 종합병원' 에 전화가 걸려 왔다.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해안의 작은 섬인 전남 여수시 손죽도의 마을 이장 우철근(禹哲根.59)씨. 수백년 동안 섬을 지켜오던 당산목이 썩어 죽어 간다는 것이다.

병원 '의료진' 들이 8시간 걸려 섬에 도착했다. 나무뿌리 위에 덮인 조경용 흙이 공기를 차단했기 때문이란 진단이 나왔다.

이어 2주에 걸친 수술을 통해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살균 처리를 한 다음 우레탄으로 빈 속을 채웠다.

나무의 겉면은 인공 나무표피로 성형까지 했다. 치료가 끝나던 날 마을에선 큰 잔치가 열렸다.

일반인에게는 아직까지 생소한 '나무병원' 의 활약이 눈부시다. 수백년된 보호수뿐 아니라 집안의 정원수와 교통사고를 당한 가로수에도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 속속 들어서는 나무병원=서울지역의 나무병원은 10여곳. 이중 몇군데는 문화재로 지정된 나무를 취급할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나무병원에서는 병든 나무의 병균을 없애고 상처난 나무에는 중장비를 동원, 외과 수술도 해준다. 치료후 흉한 모습을 처리하는 성형수술은 최근에 개발한 신기술이다.

197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무 종합병원' 을 연 강전유(姜銓愉.65)원장은 "동물병원에 비하면 나무병원은 아직도 생소한 편" 이라며 "그러나 나무 애호가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 설명했다.

◇ 치료기간.비용 천차만별=나무병원의 치료 건수는 병원당 월평균 3백~4백건에 달한다. 일부 값비싼 보호수의 경우 치료기간이 3년 넘게 걸리고 치료비가 수십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나무병원에선 무료 검진도 실시한다. 병든 나무가 있을 경우 해당 부위의 나뭇가지나 그 사진을 나무병원에 보내면 무료 진료를 거쳐 병명과 처방법, 그리고 예상 치료비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나무 의사들은 "섣불리 약품을 사용하다 나무를 죽이는 경우가 많다" 며 "무료 검진 서비스를 통해 적절한 처방을 받는 것이 좋다" 고 말했다.

◇ 이색적인 치료 과정=나무병원은 연구와 처방을 병행하기 때문에 실험실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병충해가 발견되면 샘플을 가져다 병균을 배양, 처방전을 개발해야 한다. 또 송충이나 나방 애벌레 등도 수시로 채집.연구한다.

이 때문에 낯선 병균이나 곤충이 발견되면 연구실에서 밤새는 일도 예사다. 나무의사 대부분은 조경학이나 임학 전공자다. 왕진이 잦아 매년 6개월 이상을 지방에서 보낸다.

나무의사인 박형기(32.朴炯起)씨는 "나무는 말이 없을 뿐이지, 숨쉬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며 "오랫동안 돌보던 나무의 관리를 그만 둘 때는 자식을 떼놓는 심정" 이라고 말했다.

'한강 나무병원' 의 이상길(李相吉.37)원장은 "나무의사 자격증 제도가 정착된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쉬운 점이 많다" 며 "이론에 치우친 현행 수목보호 기술사 제도 등을 실무 중심의 나무의사 제도로 전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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