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간 없어 단독계약 했다더니…탁현민과 노르웨이 답사도 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탁현민 행정관이 관계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탁현민 행정관이 관계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6월 11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선 북유럽 최초의 ‘K팝 콘서트’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노르웨이 수교 60주년 국빈방문에 맞춰 열린 행사였다.

노르웨이 주재 한국대사관이 이 콘서트를 맡긴 곳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측근이 설립한 ‘노바운더리’. 대사관은 노바운더리에서만 견적서를 받았고, 대통령 참석 등 보안상 이유로 수의계약을 맺었다. 대사관은 K팝 콘서트와 이튿날 열린 한국음악공연을 노바운더리에 맡기면서 5억 4300만원을 지급했다.

행사 기획은 탁 비서관이 했다. 당시 그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그만둔 뒤 대통령 행사기획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 중이었다. 행사를 위해 노르웨이에 머물면서 탁 비서관은 페이스북에 콘서트를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 등을 촬영해 올렸다 1시간만에 삭제하기도 했다.

노르웨이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6월12일 오슬로 시내 오페라하우스 중극장에서 열린 답례 문화행사에서 하랄 5세 국왕과 함께 공연을 보며 박수치고 있다. 중앙포토

노르웨이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6월12일 오슬로 시내 오페라하우스 중극장에서 열린 답례 문화행사에서 하랄 5세 국왕과 함께 공연을 보며 박수치고 있다. 중앙포토

문제는 노바운더리 단독으로 견적서를 내고 사업을 따낸 것이 법령 위반이라는 점이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30조는 수의계약이라도 물품 생산자가 1명인 경우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2인 이상에게서 견적서를 받아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법령 위반에 대해 대사관 측은 “대통령 방문 3주 전쯤 행사 일정이 확정돼 시간이 촉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김승수 의원실이 입수한 ‘노르웨이 용역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노바운더리는 행사 두 달 전인 4월 10일과 한 달 전인 5월 10일 현지 공연장을 답사했다. 이 답사에는 탁 비서관도 동행했다. “시간이 촉박했다”는 대사관 측의 해명과 어긋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합당은 대사관이 탁 비서관 측근에게 법령을 위반하면서까지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 의원은 “감사 청구 등을 통해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법령 위반? 시행령이 현실성 없어”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본지에 “통상 대통령의 해외 방문 계획은 몇달 전쯤 대략의 일정이 잡히지만 실제 일정은 양국의 협의 등을 거쳐 3~4주 전쯤에야 최종 확정된다”며 “이 때문에 최종 일정이 확정되기 이전에 현지에서 공연장 섭외 등을 위한 사전 답사는 의혹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이던 탁 비서관이 노바운더리와 함께 현지를 방문한 배경에 대해서도 “탁 비서관에게 노르웨이 행사에 대한 자문 요청이 이뤄졌고 함께 일을 할 업체에 대한 추천 권한도 당연히 부여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국 정상이 일정이 감안되는 이유로 추천을 받은 업체는 최종 일정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사전 준비 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며 “특히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적으로 여러 업체를 추천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대사관이 행사에 임박해 계약을 맺은 배경에 대해서는 “실제 최종 동선이 확정된 때가 그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 때 계약이 이뤄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30조에 대해서는 시행령 자체가 현실성 없다고 문제 삼았다. “해당 조항은 사실 재화나 공사 등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연 기획, 특히 정상일정에 수반돼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행사에서 복수 업체가 가격비교 견적을 내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시행령의 한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용해야 하는 주체는 업체가 아닌 대사관”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노바운더리는 ‘탁현민 프로덕션’의 조연출 출신인 이모(35)씨가 설립했다. 2016년 10월 개인 사업자로 등록해 영업을 시작했고, 2018년 3월 법인 사업자로 등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탁 비서관이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발탁되면서 노바운더리는 정부 사업을 수주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 17일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맡아 처음으로 정부 행사를 진행했다. 또 2017년 8월 20일 건군 이래 처음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합참의장 이·취임식 행사를 국방부가 노바운더리가 맡긴 사실도 확인됐다. 같은 날 오후에는 역시 문 대통령이 참석한 취임 100일 기념 대국민보고대회를 노바운더리가 맡아 진행했다. 한 업체에 하루 2건의 대통령 참석행사를 맡긴 것이다.

홍주희·강태화 기자 honghong@joongna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