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 넘은 사법부 흔들기…대법원장이 입장 표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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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법원과 담당 판사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시민들의 개별적인 의사 표시를 넘어 국회의원들과 총리·법무부 장관까지 판사를 비난하고 나서는 것은 명백히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행위다.

입법·행정부, 광화문 집회 허용 판사 공격 #판사와 법원의 독립성 지키는 게 민주사회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시는 도심 집회를 전면 금지했다. 이를 풀어달라며 법원에 10건의 집행정지 신청이 접수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이 중 8건을 기각·각하하고 2건을 허용했다. “방역수칙을 구체적으로 지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게 아니라 집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과도한 집회 금지에 대해 꾸준히 위헌 결정을 내려온 것과 결을 같이한다. 덕분에 민주화운동 세력은 지난 정권에서도 합법적으로 많은 집회를 열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촛불집회 역시 번번이 금지 처분이 있었지만,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줬다.

물론 기각당한 집회의 참가자들이 불법적으로 합류하면서 코로나 확산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 역시 표현의 자유다. 하지만 청와대 게시판에 그 책임을 물어 판사를 해임하라고 청원하는 것은 사법부를 행정부 밑에 두고 좌지우지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당 의원들도 날마다 법원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나온 이원욱 의원은 “국민들은 그들을 판새(판사 새X)라고 부른다”며 막말을 했다. 해당 재판부 부장판사 이름을 따 ‘○○○ 금지법’까지 발의했다. 감염병 확산 우려가 있는 장소에서의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하도록 한 이 법안은 비민주적인 내용도 문제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의 실명을 거론해 압박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짙다.

여기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5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잘못된 집회 허가로 (방역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소규모 교회 모임을 성급히 풀고, 임시공휴일을 지정해 광복절 연휴에 놀러 가라고 부추긴 정부의 방역 실패의 책임을 모두 법원에 돌리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사법 당국도 책상에 앉아서만 그럴 게 아니라 국민과 같이 협조할 때는 협조해야 한다”는 추미애 장관의 언급은 법원을 행정부의 시녀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누구나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나오는 발언과 행동은 법원의 독립성을 대놓고 침해하는 것이다. 당연히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 김 대법원장은 판사들에게 늘 “좋은 재판을 하라”고 강조해 왔다. 지금의 상황이 과연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