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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현재는 노조가 사용자보다 더 강력하다”

중앙일보

입력

15일 열린 민주노총의 서울 보신각 집회. 뉴시스

15일 열린 민주노총의 서울 보신각 집회. 뉴시스

“현재는 노조가 사용자보다 더 강력합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현행 노동 관련 법ㆍ제도에 대한 개정 요구 목소리를 냈다. 특히 이런 과정없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이 추진되고 있는데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18일 미하엘 라이터러 유럽연합(EU) 대사 등 21개 주한 EU 회원국 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말이다. 손 회장은 EU가 한국에 요구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해 선결 조건을 제시하며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주한 EU 대사단 초청 간담회’에서 “올해는 한국과 EU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지 10주년이 되는 해”라고 인사한 뒤 “2차 전지,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한국과 EU 기업들이 협력한다면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의 핵심 발언은 노동 현안에 있었다. EU는 “한국이 ILO핵심협약 비준을 미뤄온 게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해당한다”며 분쟁해결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데, 손 회장은 이에 대한 반박 의견을 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뉴스1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뉴스1

손 회장은 “ILO 분쟁해결 절차도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원만히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도 “한국의 투쟁적 노동운동과 대립적 노사관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법ㆍ제도의 선진화 없이 ILO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해고자ㆍ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고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한도를 제한 없이 허용한다는 법 개정이 이뤄져 한국의 노사관계와 경영 환경에 더욱 큰 부담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국무회의 의결로 국회 통과 대기 중 

EU가 비준을 요구하는 ILO 협약 내용은 ‘강제근로 금지’(29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87호), ‘자발적 단체교섭 추진’(98호) 등이다. 정부는 지난달 이 협약 내용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국회에 낸 상태다. 경총은 이 협약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노동계의 권한이 커져 경영 판단에까지 개입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손 회장은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 논의와 함께 노사관계가 균형ㆍ대등화 될 수 있도록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엔 노조가 사용자에 대한 일방적인 부당 노동행위를 했을 때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며 “한국의 노동관계 법규는 오래전에 사용자의 힘이 노조보다 우세했을 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는 노조가 사용자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 제도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손 회장은 “EU 측에서도 이러한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이해해 주시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손경식(왼쪽 세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뉴시스

손경식(왼쪽 세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뉴시스

"EU, 현재를 ILO 비준 적기로 판단하는 듯" 

EU가 한국에 ILO 협약에 대한 비준을 요구하는 건 무역 관련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경총은 보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노동법)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법적으로 노동자의 권익과 연결 관계가 덜한 경영 판단에 대해선 사용자 측의 결정을 인정하고 있지만, ILO 규범은 정치적 활동이 아닌 한 노조의 활동을 넓게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에 경영계의 반발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EU도 현 정부의 집권기가 ILO 협약을 비준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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