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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마사(牛生馬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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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6월 24일 시작한 장마가 중부 지방 기준으로 내일(12일)로 50일째다. 이번 주말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역대 최장기간인 2013년의 49일(6월 17일~8월 4일)을 넘어선다. 장마 속 폭우로 지난 주말 섬진강 일부 지점에서 물이 넘쳤다. 강줄기 따라 이틀간 500mm 가까이 폭우가 쏟아졌다.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이 침수 피해가 컸다. 주민들은 이렇다 할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서둘러 몸만 빠져나왔다.

물에 잠긴 마을과 논밭에서 가축과 야생동물이 발버둥 쳤다. 헤엄치거나 떠내려가는 장면이 TV 뉴스 속보에 속속 등장했다. 들이쳤던 물이 빠진 뒤 촬영된 사진 두 장에 눈길이 멈춰섰다. 한 장은 전남 구례 사성암 대웅전 앞에서 풀을 뜯는 소 떼였다. 다른 한 장은 구례의 한 농가 지붕에서 어쩌지 못하던 소 떼였다. 모두 물에 잠긴 외양간을 빠져나와 헤엄쳐 피난한 녀석들이었다. 경을 읽기 위해 절을 찾은 게, 개에 쫓겨 지붕에 오른 게 아니다. 헤엄치다 눈에 띈 뭍에 올랐는데, 그곳이 거기였던 거다.

헤엄이라면 소보다 말이 더 낫다고 한다. 과천 경마공원 말들은 전용 수영장에서 헤엄치며 여름을 난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헤엄치는 말이 나온다. 형주 자사 유표는 자신에게 몸을 의지하던 유비에게 말 한 필을 내렸다. 이마에 흰 점이 박힌 적로(的盧)다. 예로부터 주인을 해치는 흉마로 알려져 있다. 주위에서 만류하자 유표는 타지 않고 유비에서 줬다. 유비는 주위 만류를 듣지 않았다. 유비는 훗날 유표의 부하 채모에게 쫓겨 달아나게 됐다. 앞길이 단계(檀溪)에 가로막혔다. 단계는 중국 후베이 성의 물살이 거센 협곡이다. 적로는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쳐 협곡을 건넜다.

우생마사(牛生馬死).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거론해 화제가 된 사자성어다. 홍수가 나 물에 빠지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뜻이다. 말이 소보다 헤엄을 더 잘 친다 하지 않았나.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말은 제 헤엄 실력을 믿고 물살을 거슬러 가다가 지쳐 익사한다. 반면, 헤엄이 서툰 소는 물살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다가 물가에 닿아 목숨을 구한다. 힘 좋다고, 세력 두텁다고, 이를 믿고 밀어붙이는 걸 경계하는 말이다. 세상을 순리대로 살라는 거다. 치망설존(齒亡舌存), 단단한 이는 빠져도, 부드러운 혀는 남는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