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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 교통사고 아니다"…'보험금 95억원' 아내 살해 50대 금고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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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법, 살인 및 사기 혐의 무죄로 판단

무죄→무기징역→파기환송→금고 2년. 6년 전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이른바 ‘보험금 95억원 만삭 아내 살인사건’ 피의자인 50대 남편에게 금고형이 선고됐다.

2014년 8월 23일 경부고속도로 사고 발생 #1심 무죄→2심 무기징역→대법원은 '파기' #

대전고법 형사6부는 살인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대전고법 전경. [중앙포토]

대전고법 형사6부는 살인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대전고법 전경. [중앙포토]

 대전고법 형사6부(부장 허용석)는 10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50)씨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살인 및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를 적용, 금고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2017년 5월 대법원이 “살인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며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낸 지 3년 3개월 만에 내려진 판결이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고의를 의심할 만한 점이 없는 데다 다수의 보험에 가입했다는 간접 사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자녀를 위해 보험도 많이 가입했던 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던 점 등을 보면 살인동기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아내) 사망에 따른 보험금 95억원 가운데 54억원은 일시금이 아니고 다른 법정 상속인과 나눠 지급받게 돼 있다”며 “다만 피고인의 법정 진술과 사망진단서, 현장 사진 등을 보면 예비적 공소사실이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2015년 4월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에서 대전지법 천안지원 판사들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5년 4월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에서 대전지법 천안지원 판사들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씨는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40분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IC 부근(부산 기점 335㎞)에서 자신의 승합차를 운전하다 비상주차대에 정차 중이던 8t 화물차를 들이받아 조수석에 타고 있던 캄보디아 출신 아내 A씨(당시 24세)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임신 7개월의 만삭 상태였다.

 교통사고로 아내 A씨는 숨졌으며, 이씨는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충남의 한 읍내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던 이씨는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화물차를 보지 못하고 충돌했다”고 진술했다.

 도로교통공단 조사 결과 사고 당시 이씨 승합차는 시속 60㎞ 정도로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충돌 당시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은 없었다. 전형적인 교통사고의 형태로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보험사기가 의심된다”는 제보 전화를 받은 보험회사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조사가 시작됐다.

대전고법 형사6부는 살인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대전지법 천안지원 전경. [중앙포토]

대전고법 형사6부는 살인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대전지법 천안지원 전경. [중앙포토]

재판부, 파기환송심서 교통사고특례법 적용

 경찰과 검찰 조사 결과 이씨는 사고 전까지 아내 A씨 앞으로 25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사망보험금을 모두 합하면 95억원에 달했다. 조사 결과 이씨는 2008년 A씨와 결혼한 뒤 아내 명의로 계속 보험에 가입했다. 매달 납부한 보험금만 400만원이 넘었다.

 숨진 A씨에게서는 수면유도제 성분도 검출됐다. 사고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은 이씨가 A씨에게 수면제를 섞은 음료수를 마시게 한 뒤 고의로 사고를 낸 것으로 판단했다. 이씨의 혈액에서도 A씨와 동일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그러나 이씨가 수면제를 처방받았거나 구입한 기록은 밝혀지지 않았다.

 1심과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이씨의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에게 불리한 간접 증거만으로 범행을 증명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사고 두 달 전 30억원의 보험에 추가로 가입한 점 등을 보면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전고법 형사6부는 살인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중앙포토]

대전고법 형사6부는 살인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중앙포토]

 대법원은 2017년 5월 “살인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고의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일으켜 임신 7개월인 아내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는 범행을 감행했다고 보려면 그 동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3년간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는 검찰과 변호인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지난 6월 22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보험금을 타려는 동기가 명확하다”며 이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반면 이씨 변호인은 “살인 동기가 전혀 없으며 무죄”라고 맞섰다.

 이날 선고로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대법원 ‘재상고’가 남아 있지만,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의 결과가 바꾸는 경우가 드물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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