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에 빠진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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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정치권에 뿌려졌다는 SK 비자금 흐름의 윤곽이 드러나며 정치권은 충격에 휩싸인 채 정국에 미칠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2천억원 규모의 SK 부외자금 일부가 당시 노무현.이회창 후보 진영의 인사들에게 흘러들어갔다는 단서가 검찰에 잡힌 것이다.

소환 대상자 중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통합신당 이상수 의원은 盧후보의 사람들이었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은 이회창 후보의 경기고 동기로 李후보의 비선 측근으로 활동한 인물로 알려졌다. 崔의원은 대선때 선대위 재정위원장을 지냈다.

당초 SK 비자금 사건이 불거졌을 때 민주당과 통합신당은 '서로 네탓'논쟁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우리 당 사람은 없다'면서 검찰이 물타기 수사를 한다고 비난했다. 청와대는 짐짓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을 제외한 각 정치 주체가 SK의 검은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3인의 소환 발표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청와대다. 여야 의원들의 연루 가능성은 공공연히 제기돼 왔지만 崔전비서관의 느닷없는 등장은 정치권에서도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도덕성과 정치개혁을 강조해오던 盧대통령이 받을 정치적 상처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치권에선 진작부터 盧대통령 주변으로 흘러들어간 SK 비자금이 대선 직후 당선 축하금 성격을 띠고 있을 것이란 소문이 있었다. 崔전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벌써부터 이를 盧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게다가 여야는 사실상 총선준비 체제에 들어간 상태여서 盧대통령과 측근들의 돈 문제는 선거판 최대의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崔전비서관은 盧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로 20년간 그를 보좌해 '영원한 집사'로 불린다. 대선 때는 부산 선대위 회계책임을 맡기도 했다. 따라서 盧대통령의 돈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의 한명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 안팎에선 崔전비서관이 지난 8월 청와대에 사표를 낸 '진짜' 이유가 부산에서의 총선 출마가 아니라 SK 비자금 내사와 관련된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崔전비서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라며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상수 의원은 대선 때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공식 돈줄이다. 李의원은 "SK로부터 받은 돈은 모두 영수증 처리했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SK로부터 받은 액수에 대해 "지금 밝힐 수 없으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라며 "검찰이 소환통보한 사실을 공개한 것은 불쾌하다"고 말했다.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민주당과 딴 살림을 차린 통합신당은 민주당 등으로부터의 도덕성 공세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은 이날 밤 늦게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강민석.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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