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주중 미 대사관이 중고품 경매를 시행하자 중국 사회 일각에서 혹시 “단교를 앞둔 행동 아니냐”, “중·미가 마침내 디커플링(탈동조화)으로 가는 것인가” 등 각종 추측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주재 미 대사관, 경매 실시 #최근 철수한 청두 총영사관 물품 소문 #경매 현장엔 구식 물건만 가득 #냉장고 80개 한번에 사라는 요구도 #일부 네티즌은 "단교로 가려나"
주중 미 대사관 총무처는 지난 3일 밤 베이징 순이(順義)에 위치한 미 대사관 창고에서 중고품 경매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경매 시간은 4일 오전 9시부터 11시 30분 사이. 경매가 시작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야 경매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러자 지난달 27일 문을 닫은 청두(成都)주재 미 총영사관의 물품이 대거 경매로 나올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또 미 대사관 측이 중국에서 매년 경매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번엔 지난 3년 이래 가장 규모가 큰 경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졌다.
이에 4일 오전 적지 않은 중국인이 경매가 열린 순이 지역에 있는 미 대사관 창고를 찾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었다고 중국경제주간(中國經濟周刊) 등 중국 언론이 5일 전했다.
우선 청두에서 철수한 미 총영사관 물품은 없었다. 또 미 대사관이 ‘껌값 바겐세일’이라고 선전했지만, 현장을 다녀온 한 중국인은 “전부 구식 물건에 사진도 찍을 수 없고 물건을 무더기로 사야 하는 형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냉장고 80개와 캐비닛 40개를 한꺼번에 사라고 하는데 누가 그렇게 하겠냐”는 것이었다. 물건을 보러 갔던 또 다른 중국인은 “구식 컴퓨터를 내놓고 사용이 가능한지 여부도 알려주지 않는데 어떻게 사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미 대사관은 주택 가구와 사무용품, 전기제품, 컴퓨터와 기타 파손 물품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품질은 보증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경매 결과는 7일 이메일을 통해 알릴 예정이고, 한번 팔린 물건은 반품은 안 되며 운송비는 자비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 사회에서 "단교를 앞둔 행동" 운운 이야기가 나오자 5일 저녁 "대사관의 정상적 활동"이라는 입장을 다시 밝히기도 했다.
이에 중국 네티즌 사이에선 “이게 무슨 경매냐. 경매라는 이름을 빌려 휴지나 스탠드, 망가진 청소기 등 필요 없는 쓰레기를 처리하려는 게 아니냐”고 비난이 나오고 있다고 중국경제주간은 보도했다.
한편 홍콩 명보(明報)는 5일 경매에 특별한 물건이 나온 건 아니지만 최근 미·중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예년의 몇 배는 되는 많은 중국인이 순이 지역의 경매 현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일부 중국인은 철수한 청두 총영사관 물품을 구입해 '역사적 기념품'으로 삼으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 나가 있는 미 대사관이 경매를 시행하는 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엔 런던주재 미 대사관이 경매를 시행했으며 당시 볼보 자동차가 가장 큰 인기였다고 한다. 미 대사관은 경매로 얻은 이익을 국고에 귀속시킨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