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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병을 고친다

중앙일보

입력

자신의 아들딸도 몰라볼 만큼 병세가 심각한 치매 환자가 '옛날의 금잔디'와 '두만강'을 구성지게 부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항생제와 수술용 메스 대신에 기타와 피아노, 하프를 이용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어떨까?

상상이 잘 안 될지 모르지만 북미나 유럽에서는 이러한 음악치료법을 폭넓게 사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지난 해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원래 환자의 질병 치료에 음악을 이용한 것은 수천 년 전부터이다. 고대 이집트 문헌을 보면 음악을 심리 치료에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고, 구약성서에는 사울왕의 우울증을 다윗이 하프 연주로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국, 인도, 그리스, 아랍 등에서도 음악을 정신 치료에 이용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사고로 인해 일부분이 노출된 어린아이의 뇌가 다양한 형태의 음악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발견한 후 의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1950년 미국에서는 음악치료협회가 만들어지면서 해마다 천 명 이상의 음악치료사들이 배출된다. 유럽에서는 한 해에 몇십 명밖에 배출하지 못하지만 자격 요건을 살펴보면 보통 3년의 학부 과정과 1년 동안의 임상 경험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만큼 엄격하다.

국내에서는 현재 숙명여대에 음악치료 대학원이 있으나 실제 임상 실험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일선 의사들과의 협조 체계가 숙제로 남아 있다. 82년부터 음악치료사로 활동해온 김군자 교수는 이화여대 부속기관인 평생교육원에서 음악치료를 강의하고 있으며, 언어청각임상센터 등에서 실제 음악치료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의사들의 반대, 여러 가지 행정적인 어려움, 대중적으로 낮은 인지도 때문에 두 학교 모두 음악치료사 자격증을 발급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학위를 갖고 활동하는 음악치료사는 김군자 교수를 비롯해서 5명 정도이며 전부 북미나 유럽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다.

김군자 교수는 "음악치료의 뛰어난 효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있는 음악치료사의 숫자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일반인은 물론 20만 명이나 되는 장애인이 혜택을 못 받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 화음, 음색 등의 요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예술 장르다.

그러면 음악을 치료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소리에 반응하는 인체의 메카니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음악치료사들에 의하면 어떤 음악은 호흡률을 늦출 수 있고, 심장의 박동수도 줄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쉴새없이 움직이는 아이도 진정시킬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음악이 체표면의 온도를 변화시키고, 혈압과 근육의 긴장을 경감시키며, 뇌파의 주파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임상 결과가 나와 있다.

각각의 소리는 고유의 속도와 강도, 진동수, 높낮이, 파장 등을 가지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를 리듬의 변화와 공명이라는 두 가지의 주된 방법을 통해 음의 진동에 반응한다.

캘리포니아 안젤모의 스티븐 해펀 박사는 "공명 현상이란 다른 음높이를 지닌 서로 다른 주파수대의 음이 몸의 서로 다른 부위를 진동하도록 자극하는 물리적인 현상을 말한다. 보통 저음은 몸의 아래 부분, 고음은 몸의 윗부분에 공명한다"고 말한다.

또한 음의 요소가 뇌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데 예를 들어 리듬은 후뇌에, 음의 톤은 중뇌의 기능에 영향을 끼쳐 감정을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음악치료법은 종합병원의 수술실, 회복실, 출산실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으며 알츠하이머성 치매, 암, 에이즈 환자나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환자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등 그 활용 범위가 넓다.

특히 암환자에게는 약물 치료에 들어가기 전부터 음악치료를 통해 고통을 경감시키고 수술 후에는 병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실시한다.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는 먼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서 사용한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치료에는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치료를 받기도 하는데 이 방법은 시를 음악에 맞추어 소리내어 읽으면서 리듬에 따라 박수를 친다거나, 서서히 흐르는 말이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가장 치료 효과가 높은 환자는 특수 아동들. 그 중에서도 자폐아동이다.

김군자 교수는 "취학 전 아이의 경우 증세가 심한 자폐증일지라도 그 아이의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낸다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작년 여름부터 언어청각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Y양(3세)의 경우 처음에는 한 곡에만 집착하였는데 지금은 35곡 이상의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으며 자폐증도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치료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지난해 12월부터 '하은경 음악치료실'에서 음악치료를 받고 있는 김승현(가명·6세)군의 어머니 유모 씨(33세)는 "심한 자폐 증상을 보이며 다른 아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던 아이가 악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진지하게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며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는 2년 후에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음악치료의 방법은 초등학교의 음악수업과 비슷하다. 즉 어린아이 스스로 각종 타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한다. 이때 치료사는 보조를 맞추면서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다.

음악치료법은 음악과 여러 가지 심리학 분야가 합쳐진 것으로 행동주의 음악치료, 인본주의 음악치료, 창조적 음악치료, 상상을 유도하는 음악치료, 분석적 음악치료 등이 있다.

이 중 분석적 음악치료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과 연관된 방법이다. 이것은 질병의 원인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과 환자의 과거 속에 있다고 보고 음악을 대화소통의 매체로 이용하는 치료법이다.

독일에서 음악치료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94년부터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고 있는 하은경 씨는 "분석적 음악치료법을 실제 임상에서 적용해보면 선천적 장애를 가진 특수 아동들보다 성인환자들에게서 훨씬 그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상상을 유도하는 음악치료법(GIM: Guided Imagery and Music)같은 경우는 잘못 사용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의 김군자 교수는 "GIM의 경우는 음악을 통해 최면을 거는 방법이기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나 망상증 환자, 신경증 환자, 시각장애자, 청각장애자에게 사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치료법은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병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진다. 같은 뇌성마비 환자라고 해도 몸이 많이 불편한 경우는 왈츠 같은 부드러운 음악이 적당하고 경련성 뇌성마비 환자에게는 힘차고 절도있는 행진곡이 알맞다. 이것을 반대로 사용했을 때는 상당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치료사들의 설명이다.

위와 같은 치료법들을 실제 임상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대상은 성인과 아동으로 나눈다. 치료 시간은 보통 성인 45분, 아동 30분 정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개별치료를 할 것인지 그룹치료를 할 것인지는 치료사가 결정한다. 그룹치료일 경우 성인은 10명 내외이며 한두 명의 보조자가 필요하고, 어린아이는 3∼10명까지이며 여건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치료 대상자는 종합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이나 북미의 경우 웬만한 병원이나 암센터 등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음악치료사를 두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하은경 씨는 "내가 공부하던 독일의 종합병원에서는 치료사와 의사들 간에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진다. 예를들어 종합병원에 환자가 한 명 들어오면 매일 아침마다 그 환자의 담당의사, 간호사, 음악치료사, 미술치료사, 운동치료사, 자연요법치료사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받게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음악치료사들은 국내에서 음악치료가 활성화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한 일선 의사들의 '닫힌 시각'에서 찾는다. 특히 정신과 전문의들은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인데도 외면하고 있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적지않은 의사들이 기존의학의 한계를 깨닫고 이러한 치료법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는 이는 드물다.

외국에서는 공인되어 학과로 개설되어 있는 음악치료마저 국내에서는 이처럼 푸대접을 받으니 다른 대안적인 치료법들은 거론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물론 제도권 의료인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구체적인 임상 사례조차 없는 치료법으로 무자격 의료 시술자에게 치료받았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일인만큼 진정한 '옥석'을 가려내는 일 또한 의료인들이 해야할 의무가 아닐까?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종합병원에서도 음악치료사들이 전문의들과 머리를 맞대고 환자의 치료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 건강丹(1997년) 이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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