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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 말고 실선 노래를” 그의 조언에 ‘밤의 여왕’ 고음이 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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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소리를 찾아주는 바리톤 사무엘 윤(오른쪽)의 공개 레슨. 김호정 기자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소리를 찾아주는 바리톤 사무엘 윤(오른쪽)의 공개 레슨. 김호정 기자

지난달 말 서울 한남동의 일신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한 소프라노가 무대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불렀다. 피아노의 가운데 ‘도’에서 한 옥타브 위의 ‘파’음까지 짧게 끊어 여러 번 부르는, 어렵기로 유명한 곡이다. 정확한 음을 내기도 어렵지만 스타카토로 끊어 부르고 곧바로 다음 음도 부르는 건 쉽지 않았다. 힘겹게 노래를 마친 그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잘 안된다”고 했다.

유럽무대 20년차 성악가 사무엘 윤 #5년 전부터 국내 후배들 공개 레슨

바리톤 사무엘 윤(49)이 마련한 공개 레슨 중 한 장면이다. 사무엘 윤은 5년 전부터 한국의 후배들을 모아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다. 그중 한 명을 뽑아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 연수 단원으로 보낸다. 사무엘 윤은 2000년부터 쾰른 오페라에서 활동했고 2014년 종신 아티스트가 됐다. 이후 런던, 베를린, 파리, 마드리드 등에서 노래했고 특히 독일의 자존심이라 할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2012년 주역을 따내며 화제가 됐다. 20년 동안 유럽에서 활동하며 주요 배역을 맡은 대표적 성악가다.

사무엘 윤이 ‘밤의 여왕’을 부른 소프라노에게 첫마디를 건넸다. “가진 소리가 참 좋은데 발휘가 안 된다. 노래가 나가는 길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만들면 그렇게 무리하게 연습하지 않아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사무엘 윤은 소프라노가 고음을 낼 때의 표정부터 근육 쓰는 법까지 지도하며 소리를 바꿔냈다. “하품할 때 표정을 생각해봐. 안 예쁘게 보일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근육을 이완해야 해.” “점선 대신 실선으로 저 객석 끝까지 보낸다고 상상해보자. 그래야 소리에 라인이 나오는 거야.” 자세하게 지도를 받은 후 소프라노는 높은음에 정확히 도달해 윤기 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틀 동안 25명을 공개 레슨 했다.

사무엘 윤은 “무대 위 공연만큼 후배들을 만나 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2015년에 쾰른 극장장을 설득해 한국인 성악가를 위한 자리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성악도들은 공개 레슨을 열어 다 같이 노래를 듣고, 사무엘 윤의 조언에 노래가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올해 레슨엔 유난히 참가자가 많았다. 코로나19로 유학을 못 떠났거나 도중에 돌아와 국내에 있는 성악가들이 많아서다. 100여 명이 동영상을 보냈고 이 중 25명이 레슨 무대에 섰다. 사무엘 윤은 오랜 유럽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했다. “아침에 갑자기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하게 되어도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 “지휘자가 소리를 5%만 줄이라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식이다. 독일어 모음과 자음도 정확히 짚어준다.

사무엘 윤은 “한국의 성악도들은 어렵고 효과적인 노래를 빨리 익히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을 많이 해봐야 하는데 그 과정이 짧다. 기초를 쌓으며 본인 색깔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는 쾰른 극장 수습 단원을 선발할 때 실력뿐 아니라 성실성을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남기는 아주 힘든 일이다. 긍정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2015년 그가 선발한 바리톤 최인식은 오페라 스튜디오의 수습 단원 2년 후 오페라 극장 정단원이 됐다. “자랑스럽다. 그들이 자신만을 위해 노래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길 기원한다.” 올해 공개 레슨 끝에는 테너 김승직이 선발됐고 내년 시즌부터 쾰른의 오페라 스튜디오에 참가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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