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 의학프리즘] 임상시험에 대한 오해

중앙일보

입력

첨단과학시대에도 변변한 감기치료제 하나 개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체를 대상으로 연구자 마음대로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의학이 다른 자연과학에 비해 발전이 더딘 이유이기도 하다.

의학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 임상시험센터는 자신에게 신약을 투여해달라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몇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겨우 실험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외국에서 개발된 신약이라도 국내에서 시판되려면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따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국내 대부분의 병원들이 임상시험에 애로를 겪고 있는 것도 신약 도입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임상시험용 치료제는 전액 무료지만 아직도 임상시험을 '마루타식 인체실험' 으로 오해하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환자의 동의를 받으러 간 의사마다 차가운 눈길을 의식해야 한다.

이 점에서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허가절차를 밟고 있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다국적 제약기업 노바티스에서 개발한 글리벡은 골수이식이 불가능한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신약으로 전세계 27개국에서 임상시험 중이다.

일부 국내 환자들은 다급한 나머지 약을 구하기 위해 미국과 홍콩을 찾아 임상시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리벡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약에 대해 임상시험은 푸대접을 받는다.

임상시험은 신약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환자들이 져야 할 최소한의 부담이다. 임상시험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