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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놓친 임대차 3법, 핫마켓일땐 전세값 더 불 지른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달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기뻐하고 있다. 왼쪽은 김진표 의원. 연합뉴스

지난 달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기뻐하고 있다. 왼쪽은 김진표 의원. 연합뉴스

[경제통]임대차 3법과 전셋값 상승

정부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임대차 3법'을 지난달 31일부터 시행했다. 1989년 최소 임대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이후, 임대차 시장에서는 가장 큰 변화다. 임대차 3법 도입 배경에는 최근 전·월세 가격 상승이 있다. 7월 넷째 주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0.17% 오르며 57주 연속 상승했다. 이런 임대료 상승을 막기 위해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논리다.
그러나 시장이 정말 정부 의도대로 움직일까. 전문가들은 되려 전·월세 가격이 오를 때는 가격 규제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규제는 임대료가 안정되거나 떨어질 때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한 법무부와 국토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서 살펴봤다.

냉탕과 온탕 반복하는 임대차 시장

연도별 명목전세가격. 국토연구원

연도별 명목전세가격. 국토연구원

전·월세 물량은 공장에서 물건 만들듯 바로 나오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기간에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 가격이 내려갔다, 또 다른 시기에는 반대로 가격이 오르는 등 냉·온탕을 반복한다. 임대료 가격이 떨어지는 시기를 콜드 마켓(cold market), 반대를 핫 마켓(hot market)이라 부른다.

전세 가격은 핫 마켓과 콜드 마켓 국면을 번갈아 반복해 왔다. 1980년대 말은 전셋값이 오르는 핫 마켓 국면이었지만, 외환위기를 맞은 1990년 후반에는 콜드 마켓에 접어들었다. 2000년 초반 전셋값은 급속한 상승 추세를 보였고,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소 주춤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에는 급격히 전셋값이 상승했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임대차 보호법도 어떤 시장 상황에 도입하는지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30년 전 교훈…오를 때 규제하면 더 올라

2017년 국토연구원의 '임차 가구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추진 방향과 전략' 보고서는 임대차 규제를 도입하려면 핫 마켓보다 콜드 마켓일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격이 오르는 핫 마켓일때는 집 주인이 정부 규제로 인해 앞으로 못 올리는 임대료를 초기에 미리 올리기 때문에 오히려 임대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전·월세 상한제 같은 규제는 "이미 충분히 전셋값이 상승해 더는 전셋값 상승 압력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1989년 최단 임대 기간을 1년→2년으로 늘리는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한 후 전세가격이 급등했다. 국토교통부

1989년 최단 임대 기간을 1년→2년으로 늘리는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한 후 전세가격이 급등했다. 국토교통부

역사적으로 경험도 했다. 1989년 최단 임대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법률개정 직전인 1988년의 전셋값 연간 상승률은 7.6%였다. 전형적인 핫 마켓 국면이었다. 이때 임대차 규제를 도입하자 1989년 전셋값은 23.7% 폭등했다. 집주인이 2년 동안 올릴 수 있는 임대료를 예상해서 한 번에 올려버린 탓이다. 2년 계약을 본격 적용한 1990년에도 전셋값은 16.2%로 올랐다.

법무부가 지난해 용역 의뢰한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의 영향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모의계산도 나와 있다. 현재 도입된 임대차 3법과 같은 조건에서 임대료 예상 상승률을 핫 마켓 국면인 8%로 가정하면 초기 임대료는 규제 전보다 5.62% 더 오른다. 연간 임대료 상승률을 11%로 더 올리면 8.32% 더 오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예상 임대료 상승률이 2% 정도로 저조한 콜드마켓에서는 1.67%밖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가격이 오를 때 규제하면 오히려 초기 임대료가 더 올라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핫 마켓'…골든타임 놓쳤다

그렇다면 지금은 규제 도입의 적절한 시기일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셋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2.55% 하락했다. 수도권은 2.53% 떨어졌다. 전형적인 콜드마켓이었다. 하지만 올해 7월까지 누적 전셋값은 2.53% 올랐다. 지난해 1년 동안 떨어진 것과 비슷하게 오른 것이다. 수도권으로 좁혀 보면 3.25%로 상승 폭이 더 커진다. 가격만으로도 핫 마켓 국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가격뿐 아니다. 전셋값에 영향을 주는 공급량이 내년부터 준다. 업계에서 파악하는 내년 서울 아파트 공급량은 2만5000가구다.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공급량이 4만 가구 수준인 것으로 고려하면 큰 감소다. 정책 영향도 있다. 최근 주택 가격이 급등했지만, 대출 규제 등으로 집 사기는 까다로워졌다. 매매 수요가 전·월세로 돌아서면 임대료 상승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전·월세 가격이 안정됐던 2017년~2019년이 도입 적기였다고 본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임대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3년이라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제학적으로 볼 때 임대차 3법은 임대료가 오르지 않을 때 도입하는 것이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임대료가 오르지 않으면 규제를 도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규제 도입 시기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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