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 투표'로 한날 맞붙은 美 전·현직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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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대선에서 확대 실시될 예정인 '우편 투표'를 놓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입장은 정반대다. [로이터/AP=연합]

이번 미국 대선에서 확대 실시될 예정인 '우편 투표'를 놓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입장은 정반대다. [로이터/AP=연합]

이번 미국 대선에서 확대 실시될 수 있는 '우편 투표'를 놓고 전·현직 대통령이 한날 맞붙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현지시간 30일 오전 트위터로 '대선 연기'에 대한 운을 띄우면서 우편 투표의 문제를 지적했다.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보내면 개표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선거 결과도 늦게 나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일 밤이 아닌 며칠 뒤, 몇 달 뒤, 심지어 몇 년 뒤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날 오후 진행한 코로나19 관련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우편 투표가 주요 화두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연기'에 대해선 한발 물러섰지만 우편 투표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강조했다. 일부 주에서 우편 투표용지가 대거 무효가 됐다는 기사를 가져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날 전임자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내놨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존 루이스 하원의원 장례식에서 "지금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투표를 좌절시키려는 권력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표소의 문을 닫고 제한적인 신분의 소수자·학생을 문제 삼고, 우체국 시스템을 약화하는 등 외과수술식의 정밀한 방식으로 우리 투표권을 공격하고 있다"라고도 비판했다.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한 이야기다.

우편 투표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몇 달 전부터 계속 됐다. 다른 지역 투표소에 가서 직접 기표하는 부재자 투표와 달리 우편 투표는 집에서 미리 받은 투표용지에 기표한 뒤 다시 봉투에 넣어 선거 당일까지 해당 지역 개표소로 부치는 방식이다. 현재는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코로나19가 덮친 이번 대선에서는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공화당에선 허위투표나 보안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우편 투표 확대를 반대했다. 반면 민주당에선 흑인 등 유색인종,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아지는 걸 막으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오바마 "이제 투표 위해 젤리빈 수 안 세도 돼"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추도사에서 "이제 투표를 하기 위해 더는 항아리 속 젤리빈의 수를 추측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젤리빈

젤리빈

이른바 '젤리빈 테스트' 는 흑인 인권 운동 역사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1940년대만 해도 백인 선거 담당자가 흑인에겐 항아리에 담긴 젤리빈 중 검은 것의 숫자를 맞춰야 유권자 등록을 해주겠다는 식의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마디로 흑인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테레사 버로스라는 앨라배마의 한 흑인 여성이 이에 정면으로 맞섰고, 끈질기게 유권자 등록을 요구한 결과 투표권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바로 이 사건에 빗대 오바마 대통령은 투표권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이날 우편 투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모든 미국인이 투표할 수 있도록 계속 나아가자"고 한 대목에서는 장례식 참석자들의 기립박수가 나왔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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