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분만에 부동산 6법 해치웠다, 與 폭주 뒤엔 김태년의 돌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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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야당은 없었다. 여당 단독으로 부동산 대책 등 13개 법안을 처리한 28일 국회 기획재정·국토교통·행정안전위 전체회의 얘기다. 이날 상정에서 의결까지 걸린 시간은 60분(국토교통위)에서 7시간(기획재정위)에 불과했다. 현 추세라면 법사위와 4일 본회의도 사실상 여당의 강행처리 수순이다. 거여(巨與)의 폭주가 헌정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날 기재위는 종합부동산세법·소득세법·법인세법 개정안 등 ‘부동산 3법’을 상정해 의결했다. 정부의 지난 12·16, 6·17, 7·10 대책에 따른 보유세 강화 조처다. 국토위는 ‘임대차 3법’ 중 하나인 전월세신고제 도입을 위한 부동산 거래신고법 개정안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을 통과시켰고, 행안위는 질병관리본부의 청(廳) 승격 및 보건복지부의 복수차관제 도입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취득세 등 거래세 강화를 위한 지방세법을 포함해 총 4개 법안을 의결했다.

“소관 부처의 업무보고와 소위 구성이 선행돼야 한다” “야당이 제출한 법안은 두고 왜 일부 여당 법안만 상정하느냐”고 반발하던 야당은 집단 퇴장했지만, 자당(自黨) 소속 의원만으로 의결정족수를 충족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176석)은 단독으로 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상임위 강제 배정에 항의해 불참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상임위 강제 배정에 항의해 불참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상임위 풍경은 이날 오전 예고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도 신속한 입법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시장의 혼란과 불안은 커지기 마련”이라며 “집값을 안정시키고 불안 심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7·10 대책 후속 입법을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래통합당이 상임위마다 부동산 입법 처리에 발목을 잡는 것은 시장의 과열을 부추기는 투기 방조 행위와 다를 바 없다”며 “또다시 시간 끌기로 지연시킨다면 민주당은 단호한 대처로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부동산 관련 법안을 7월 임시국회(~8월 4일) 내 처리해 시장에 정부·여당의 의지를 담은 신호를 조기 발신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가진 원내대표 출마 선언 때 “국회가 숙의의 총량을 유지하면서도 결정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며 ‘일하는 국회’를 강조했다. 당일 본지 인터뷰에서도 “숙의의 총량이 많아지면 갈등·이해관계 조정에 대한 기본은 확보하게 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법안 처리 과정에서 ‘숙의’란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이헌승 미래통합당 국토위 간사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 상정에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뉴스1]

이헌승 미래통합당 국토위 간사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 상정에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뉴스1]

학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회민주주의에서 국민이 준 힘으로 독단적으로 결정하거나 숙의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여당이 오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법안은 한번 처리하면 다시 바꾸기도 어려운데,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충분히 논의해도 되지 않았나”라며 “입법 공청회도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이 대책이 작동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표결하면 지니까 그냥 퇴장하는 전략이 과연 야당에 어떤 실익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석수(103석)만으로는 민주당을 저지할 방법이 없는 통합당은 29일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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