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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 확충, 이제는 힘을 모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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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주용 한국교통대 행정학부 교수

정주용 한국교통대 행정학부 교수

원자력 발전의 부산물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는 기술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사회적 문제다. 원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로 보관하는 저장시설의 확충이 필요하지만 이를 증설하는 문제는 수년간 논란이 되어 왔다.

다행히 지난 24일 그 논란의 일부분이 일단락됐다.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는 지역실행기구와 공동으로 월성원전 맥스터(임시저장시설·사진) 증설에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했다. 경주시민 145명으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맥스터 증설에 대해 81.4%의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앞으로 재검토위원회는 지역 공론화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최종 권고문을 제안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바탕으로 맥스터 증설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월성 원전은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포화율이 90%가 넘었고, 올 8월 안에 증설에 착수하지 못하면 2022년 3월쯤 저장용량이 포화한다. 이럴 경우 대구·경북 전력 사용량의 29%를 차지하는 월성 원전 2~4호기의 가동이 모두 중단되는 사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시민사회단체의 공론화 보이콧과 반대 시위가 계속됐고, 원전 인근의 울산 시민사회와도 갈등을 빚었다. 공론화 위원들의 집단 탈퇴, 심지어 위원장이 중도 사퇴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재검토위원회와 경주시가 최초로 이해 당사자인 원전 소재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참여단을 구성하고, 쟁점에 대한 의견 수렴과 공론화를 추진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역사회의 핵심적인 갈등 사안을 소통과 공감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은 성숙한 시민사회를 향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이제는 정부 부처의 조속한 결정과 적극적인 행정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갈등과 논쟁을 확대 재생산할 것이 아니라 찬반 모두의 입장을 경청하면서 그동안의 감정적 소모를 해결해야 한다. 단순히 찬반 양측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갈등을 적극적으로 봉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의 부재로 기약 없는 임시저장 논란, 중간저장시설 및 영구처분 시설 확보 등을 둘러싸고 ‘갈등사회’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지역 공론화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산적해 있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지역별 이슈에 대해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였듯이 국가적 이슈는 전 국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적이고 공학적인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른 원전 소재 지역과 재검토위원회는 이번 경주 시민들의 공론화를 계기로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공론화를 추진할 수 있는지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그동안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취했다면 이번 공론화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굳건한 이해와 신념으로 여러 사안에서 반대 활동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면서 자신의 이해와 신념을 소폭 수정하는 것도 현실적인 타협 방법이다. 앞으로 진행될 공론화 과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필자 역시 지역 주민과 국민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앞으로의 공론화는 첨예한 갈등을 넘어 상호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범국가적인 에너지 수급 문제와 국민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이 돼야 한다.

정주용 한국교통대 행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