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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서 의혹 그대로인데, 박지원 국정원장 초스피드 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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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지원

박지원

미래통합당이 제기한 ‘30억 달러 대북 지원 이면 합의 의혹’에 대한 공방이 이어진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사진) 국가정보원장의 임명안을 재가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한 지 3시간30분 만에 속전속결로 임명 절차가 진행됐다. 통합당은 박 원장이 “부적격”이라며 정보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원장의 임기는 29일 시작한다.

여당 ‘단독 보고서’ 3시간 뒤 재가 #주호영 “문건, 전직 공무원이 제보” #박 “실명 밝혀라, 법적 책임 묻겠다”

전날 청문회에서 의혹 문건(남북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을 공개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도 “박 후보자는 서명한 사실을 부인했지만, 특검과 대법원 판결로 확인됐던 대북 송금 문제다. 판결문에 의하더라도, 이것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북한 측과 내통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문 대통령이 “아무리 야당이라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유감을 표하고 박 원장도 "모욕적”이라고 했던 ‘내통’이라는 표현을 다시 썼다.

주 원내대표는 문건 출처에 대해 “믿을 수밖에 없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사무실에 찾아와 줬다. 청문회에서 이것을 문제 삼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본은 평양에 한 부, 우리나라에 한 부가 극비로 보관돼 있지 않겠느냐. 이건 사본이다”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당시 대북) 특사단에 문의한바 ‘전혀 기억이 없고 사실이 아니다’는 확인을 받았다”며 “주 원내대표가 합의서 사본을 제보했다고 거명한 ‘전직 고위공무원’의 실명을 밝히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 원내대표의 주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성사시킨 대북 특사단에 대한 중대한 명예훼손”이라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전날 비공개로 전환된 청문회에서는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민간 기업이 아시아개발은행 등을 통해 20억~30억불 투자가 가능할 것이란 원론적 이야기를 했다. 합의문은 절대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원장은 2000년 3월 문화관광부 장관일 때 대북 특사로 발탁돼 북측의 송호경 부위원장과 비밀 접촉을 하며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다. 같은 해 4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담긴 남북 합의서를 체결하고 이틀 뒤 언론에 공개했다. 김 대통령은 6월 13~1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03년 대북 송금 사건 특검에서는 회담 추진 과정에서 현대상선이 5억 달러(현물 5000만 달러 포함)를 북한에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고, 박 원장은 대북 송금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특검이 끝난 뒤에도 대북 문제에 정통한 인사들 사이에선 ‘수사를 통해 밝혀진 건 극히 일부일 뿐 실제 북한으로 송금하려고 한 돈의 규모는 훨씬 컸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했다. 반면에 익명을 원한 여권의 인사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면 합의를 하고 그걸 문서화해 서명까지 했다는 건 관례나 상식으로 전혀 맞지 않는 얘기”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현일훈·김기정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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