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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멜라니 별이 되어 사라지다, 향년 104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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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과 비비언 리. 1939년 12월 14일 촬영된 이 사진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틀랜타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들이 도착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과 비비언 리. 1939년 12월 14일 촬영된 이 사진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틀랜타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들이 도착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하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104세.

이날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 하빌랜드는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로이터통신은 그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한 배우 중 마지막 생존자라고 전했다. 드 하빌랜드는 1930년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황금기’ 여배우 중 하나였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각각 받았다.

드 하빌랜드는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3년 뒤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가 19세였던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영화 ‘한 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다. 4년 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당시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와 대비되는 성격인 멜라니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드 하빌랜드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To Each His Own)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1947년과 1950년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1950년 3월 24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1950년 3월 24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는 1943년 영화사 워너 브라더스가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자신을 계속 묶어두려 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은 어떤 제작사도 배우의 동의 없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며 드 하빌랜드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의 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소송은 영화계의 권력이 대형 영화사로부터 배우에게로 이동하는 계기가 됐다.

드 하빌랜드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픽션’에 출연했던 고(故) 조앤 폰테인(2013년 별세)이다. 드 하빌랜드와 폰테인은 자매 모두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록을 세웠지만 사이가 나빠 의절했다. 1942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드 하빌랜드와 폰테인 둘 다 올랐으나 여우주연상은 동생이 폰테인에 돌아간 일화도 있다. 할리우드 사상 가장 앙숙이었던 스타 자매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이 자매는 1975년 어머니의 별세 이후에는 말도 섞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2013년 12월 동생 폰테인이 9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드 하빌랜드는 “너무나 슬프다”고 밝힌 바 있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생전 모습. 2011년 2월 25일 촬영된 이 사진은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열리는 제36회 세자르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모습. [EPA=연합뉴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생전 모습. 2011년 2월 25일 촬영된 이 사진은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열리는 제36회 세자르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모습. [EPA=연합뉴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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