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포토존은 세탁소, 의상은 버려진 옷…SNS 인싸 된 80대 부부

중앙일보

입력

베이지색 스커트와 티셔츠에 데님 스니커즈를 매치한 할머니가 팔짱을 낀 채 세탁기에 기대 서 있다. 시크한 표정도 잊지 않는다. 티셔츠와 면바지, 선글라스로 멋을 낸 할아버지는 세탁기 문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바라본다.

60여년간 세탁소 운영 중인 대만 80대 부부 #손님이 안 찾아간 옷들 차려 입고 SNS 올려 #수백벌 기부했지만 남은 수백 처리 곤란 #"과거 귀했던 옷, 요즘 안 찾아가는 사람 많아"

포토존이 된 이곳은 다름 아닌 세탁소. 노부부가 차려입은 옷들은 세탁소 손님들이 수년에서 수십 년 전에 맡겨 놓고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다.

창완지(83‧오른쪽) 할아버지와 수쉬우어(84) 할머니. 대만 타이중시에서 60여 년째 세탁소를 운영 중인 부부는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매치해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인기를 끌고 있다. 첫 게시물을 올린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팔로워가 14만명이나 된다. [인스타그램 캡처]

창완지(83‧오른쪽) 할아버지와 수쉬우어(84) 할머니. 대만 타이중시에서 60여 년째 세탁소를 운영 중인 부부는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매치해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인기를 끌고 있다. 첫 게시물을 올린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팔로워가 14만명이나 된다. [인스타그램 캡처]

창완지 할아버지와 수쉬우어 할머니. 주인을 잃은 오래된 정장을 새롭게 코디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창완지 할아버지와 수쉬우어 할머니. 주인을 잃은 오래된 정장을 새롭게 코디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대만 타이중시에서 60여 년째 세탁소를 운영 중인 창완지(83· 남편), 수쉬우어(84·아내) 부부. 주인 잃은 옷들을 요즘 트렌드에 맞게 코디해 입은 모습을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

첫 게시물을 올린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팔로워가 14만명으로 늘었다. 세탁소에서 조용한 일상을 보내던 노부부가 하루아침에 'SNS 인싸'가 된 것이다. 부부는 오래된 옷들도 잘 매치하면 얼마든지 요즘 트렌드에 맞을 수 있고, 나이가 패션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24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BBC는 부부를 인터뷰해 사연을 전했다. 수 할머니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내 사진을 보고 싶어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활짝 웃었다. 부부가 세탁소를 운영한 세월만큼이나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은 옷 수백 벌이 쌓여 갔다. 부부는 수백 벌을 이재민들에게 기부했지만, 그래도 수백 벌이 남았다.

옷 처리를 놓고 고민하는 부부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한 건 손자였다. 부부의 손자인 리프 창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로움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사시도록 돕고 싶었다”면서 “또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자신의 옷을 찾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손자는 물론이고 손자의 친구들까지 나서 부부의 코디를 도왔다. 모자‧선글라스와 같은 액세서리를 빌려주기도 했다. 오래된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가 스니커즈를 신고 허리에 스카프를 두르자 요즘 대세인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스타일이 완성됐다.

할머니는 체크무늬 원피스에 베레모를 매치해 데이트룩을 선보였다. 창 할아버지는 "이렇게 입으니 30년은 젊어지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수 할머니는 "체크무늬 원피스와 베레모를 코디한 룩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창 할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14세 때부터 세탁소 일을 시작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부쩍 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세탁물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엔 옷이 매우 비쌌어요. 결혼할 때 양복값을 치르느라 쌀 20포대가 들었지요. 전당포에 옷을 맡기고 돈을 빌릴 수 있을 정도로 귀했어요.”

창완지 할아버지와 수쉬우어 할머니의 평소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창완지 할아버지와 수쉬우어 할머니의 평소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그는 “하지만 요즘은 옷값이 너무 싸서 세탁을 맡기고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사나 이혼과 같은 인생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거나 주인이 세상을 떠나 옷을 찾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는 추측한다.

이전까지 부부는 SNS 계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왜 SNS에 사진을 올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과연 젊은 사람들이 이 사진들을 좋아할지 의구심도 가졌다. 심지어 ‘팔로워’를 ‘스토커’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부부의 인스타에 사람들이 올리는 반응을 손자로부터 전해 듣는 게 큰 낙이 됐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런던에 사는 한 여성 팔로워는 “부부가 너무 귀엽다. 계속 이런 스타일링을 유지해달라”고 썼다. 또 다른 팔로워는 “부부의 사랑은 나이를 먹는 게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다”고 적었다.

조부모의 모습은 손자에게도 깨달음을 줬다. 손자 창은 “내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위해 모든 시간을 바쳤지만 연로하신 조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스타를 본 많은 사람이 '조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는 반응을 보일 때 보람된다”고 말했다.

80세가 넘었지만, 부부는 아직 은퇴할 계획이 전혀 없다. 입어야 할 옷이 잔뜩 남아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겨울 시즌 콜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창 할아버지는 “사람은 마음이 늙지 않는 이상 늙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