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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 알아보다 "이혼"···정부가 집값 세금폭탄 퍼붓자 기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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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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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원 세금을 낼 바엔 이혼해서 노후자금을 마련하겠다."

익명을 요구한 세무사가 최근 상담한 60대 부부의 얘기다. 15억 상당의 서울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부부가 이혼 얘기까지 나온 데는 52% 양도소득세 중과세율이 결정적이었다. ‘시세차익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느니 이혼해 1가구 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는 게 낫다’는 아내의 주장에 남편과 말다툼이 일었다. 중간에 낀 세무사는 이혼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다주택자는 자녀 독립, 세대분리가 유리 #15억 아파트 이혼하니 양도세 3015만원 #결혼해도 혼인신고 미루는 20ㆍ30세대

주택 투기를 막기 위한 정부의 과세 칼날이 엉뚱하게도 ‘가족 해체’의 불씨가 되고 있다. 세법상 거주자와 배우자, 그리고 자녀가 동일한 주소에서 살면 하나의 세대로 구분한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한 가족이 ‘한집’에 살면 보유세는 물론 양도소득세 중과로 세금 부담이 확 커진다. 이 때문에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법과 제도로 주택시장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다양한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양도세 6억원 아끼는데, 갈라설까

상담 사례처럼 다주택자인 부부가 갈라서면 주택 관련 세금에 미치는 영향이 클까. 남편 A씨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강아파트(전용면적 76㎡)를, 아내 B씨는 서울 종로구 홍파동 경희궁자이2단지(전용 84㎡)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A씨 부부의 내년 전체 보유세는 1366만원으로 올해(905만원)보다 50% 오른다. 양경섭 온세그룹 세무사가 7ㆍ10대책에 따른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상과 내년 공시가격이 10% 상승할 것으로 가정해 모의 계산(시뮬레이션)한 결과다.

내년 보유세 부담을 줄이려면 집을 정리해야 한다. 남편이 18년 전 4억원에 구매한 한강아파트를 내년 5월 전에 16억원에 팔면 양도소득세는 6억4600만원에 이른다. 인별 합산인 보유세와 달리 양도소득세는 세대별로 합산하다 보니 1가구 2주택으로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 포함된다. 부부의 실질적인 수익은 5억5400만원으로 시세차익의 절반도 안 된다.

만일 A씨 부부가 이혼한다면 한강아파트 매각에 따른 양도소득세는 3115만원으로 확 줄어든다. 12억 상당의 시세차익을 대부분 손에 쥘 수 있다. 1가구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60대 부부의 가상 시나리오별 세금 시뮬레이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60대 부부의 가상 시나리오별 세금 시뮬레이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집’에 모여 살면, ‘세금폭탄’ 우려

부부 사이 뿐만이 아니다. 맞벌이 부부인 최모(40)씨는 육아 문제로 10년 이상 경기도 용인의 친정집에서 살다가 최근 분가했다. 매년 늘어나는 보유세가 부담돼서다.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한 최씨는 부모집 주소로 옮겨 살면서 1가구 2주택자가 됐다. 종합부동산세 공제금액은 1주택자 일 때 9억원에서 6억원으로 줄었다. 종합부동산세율 인상과 함께 공시가격이 약 10% 오르면 내년 보유세는 478만원으로 따로 살 때(257만원)보다 200만원 이상 불어난다.

보유세와 양도세가 동시에 강화되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게 쉽지 않다. 각자 주택을 소유한 부모와 형제가 한집에 살았다간 세대 기준 3주택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양 세무사는 “절세 측면에서는 자녀가 결혼했거나 만 30세 이상일 경우 따로 사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예외 조항은 있다. 60세 이상 아픈 부모를 모시기 위해 2주택이 된 경우에는 10년간 1가구 2주택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양도소득세도 10년 안에 먼저 파는 집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결혼은 하되, 혼인신고는 나중에

최근 주택 문제로 결혼식을 한 뒤에 혼인신고를 미루는 신혼부부가 있다. 중앙포토.

최근 주택 문제로 결혼식을 한 뒤에 혼인신고를 미루는 신혼부부가 있다. 중앙포토.

주택 문제로 혼인신고를 미루는 신혼부부도 나타나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기본 조건은 혼인신고일 기준 7년 이내 무주택 구성원이다. 수도권 인기 지역은 워낙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자녀가 있어야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자녀 계획이 있는 부부라면 아이가 생긴 후로 혼인신고를 미루는 게 유리하다. 부양가족을 늘려 청약 당첨 가점을 쌓는 동시에 신혼부부 특별공급 신청 기한인 7년을 벌 수 있어서다.

각자 집 한 채씩을 가진 '부자 신혼부부'도 혼인신고를 서두르지 않는다고 한다. 세법상 혼인신고로 2주택자가 된 신혼부부는 5년 내 한 채를 팔면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준다. 일부 신혼부부는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5년 뒤 매각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미룬다고 세무사들은 전한다.

그러나 당장의 절세를 위한 편법은 자칫하면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주택 관련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이혼 상담이 늘었다”며 “절세를 위한 위장 이혼을 했다가는 기존 세금에 가산세까지 붙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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