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운명의 날'인 15일이 밝았다. 15일 자정은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통보한 인수합병(M&A) 선결 조건 이행 시한이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노조의 운수권 특혜 주장을 정면 반박하면서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어 계약 무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제주항공 “운수권 배분 특혜 없었다”
14일 제주항공은 최근 이스타항공 노조가 ‘지난달 15일 발표된 국토교통부 운수권 배분에서 제주항공이 25개 노선 가운데 11개 노선을 배정받는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제주항공은 이날 입장 자료에서 “운수권 배분 당시 제주항공이 배정받은 11개 노선 중 김포~가오슝, 부산~상하이 노선을 제외한 9개 노선은 다른 항공사에서 신청하지 않은 단독 신청 노선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그동안 국토부의 운수권 배분 과정에서 제주항공이 이원5자유(현지 승객을 제3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권리) 운수권을 독점적으로 배분받은 것은 이스타항공 인수에 어려움을 겪는 제주항공을 위한 정책적 특혜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은 “국토부는 타 항공사가 신청하지 않은 노선을 신청한 항공사에 바로 운수권을 배정한다”면서 “제주항공은 총 13개 노선을 신청했고 이중 경합 노선이 4개, 9개가 단독 신청한 비경합 노선이었다”고 반박했다.
국토부는 경합 노선에 대해 민간인으로 구성된 항공교통심의위원회에서 신청한 항공사 발표, 정량 평가서 등을 검토해 최고 점수를 받은 항공사에 운수권을 배분한다.
노조 측에서 주장한 이원5자유와 중간5자유(자국에서 제3국을 거쳐 상대국을 운항할 수 있는 권리) 6개 노선 운수권은 제주항공이 단독 신청해 배분받은 노선이라 특혜가 아니라는 게 제주항공 측의 주장이다.
노조는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제주항공은 저비용항공사(LCC)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할 것”이라며 “인수 과정에서 특혜를 받으며 이스타항공을 회생 불가능 상태로 만들고, 인제 와서 체불임금 해결 등을 이유로 사실상 인수 거부를 선언하고 있다”고 맞섰다.
미지급금 낮추기 총력전 나선 이스타
의견 충돌과 폭로전으로 맞붙은 상황에서도 이스타항공 측은 파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제주항공의 인수가 불발되면 사실상 파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은 올 1분기 자본총계 -104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새 인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법정관리에 돌입한다면 기업 회생이 아닌 기업 청산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관건은 미지급금 줄이기다. 앞서 제주항공은 지난 1일 이스타항공에 “영업일 기준 10일 안에 미지급금 해소 등 선결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시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스타항공이 15일까지 250억원가량의 체불 임금을 포함한 1700억 원대의 미지급금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종사 노조도 "고용 보장 땐 일부 체불 임금 포기 가능"
셧다운 상태로 매출이 없는 이스타항공은 250억 원대의 체불임금은 임직원의 고통 분담으로, 500억 원대인 비행기 리스료와 유류비 등은 해당 회사와 기관에 줄여달라는 요청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국토부엔 공항시설 이용료 감면도 요구했다. 그동안 임금 반납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도 고용이 보장된다면 체불임금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제주항공의 인수 의지가 확실하지 않으면 M&A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미지급금을 1000억원 이하로 줄이는 노력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제주항공이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15일 자정 이후 변수는
이스타항공이 막판 타결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정부가 중재에 나서면서 제주항공의 부담은 커지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이어 고용노동부가 8일 이스타항공 직원이 임금 반납 의지가 있다며 중재에 나선 이후 10일엔 제주항공과 면담 자리까지 마련했다.
항공업계에선 제주항공이 대승적 차원에서 이스타항공을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제주항공도 14일 “선결 조건 시한인 15일 자정을 넘길 경우에도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길 뿐 계약이 자동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일단 시한까지 이스타항공의 입장을 기다린 다음, 인수 여부를 판단할 것”이란 한발 물러선 듯한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제주항공도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다. 제주항공은 올해 1분기 65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고용부와의 면담 자리에서 제주항공 측은 선결 조건이 일부 해소된다 하더라도 이스타항공 인수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 변수는 정부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한 정부의 추가 지원 여부다. 산업은행은 제주항공에 이스타항공 인수를 전제로 17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딜이 깨지면 1500여명의 이스타항공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돼 정부 입장에선 짐이 될 것”이라면서도 “이스타항공 노조의 제주항공에 대한 운수권 특혜 배분 의혹에 더해 정부의 추가 금융지원까지 이뤄진다면 특혜 의혹이 더 커질 것이란 점은 부담”이라고 분석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