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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에 제주항공 반격 "셧다운은 이스타 결정, 신뢰 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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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이 폭로전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제주항공이 셧다운 지시 등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놨다. 사진은 7일 인천국제공항에 멈춰서 있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이 폭로전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제주항공이 셧다운 지시 등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놨다. 사진은 7일 인천국제공항에 멈춰서 있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이 폭로전 양상으로 번지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셧다운과 임금 체불 등에 대한 책임을 놓고 양측이 진실 공방을 벌이며 갈등이 커진만큼 M&A가 결국 무산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제주항공 여객기. 뉴스1

제주항공 여객기. 뉴스1

‘도덕성 타격’ 입은 제주항공의 반격

제주항공은 7일 입장문을 통해 “셧다운은 어디까지나 이스타항공 측의 의사결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이스타항공 측에서 제주항공 의견에 구속될 이유도 없었다”고 밝혔다.

[뉴스분석]

전날 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이 이석주 당시 제주항공 대표와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 간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제주항공이 셧다운을 종용했다고 폭로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기재 축소에 따른 직원 구조조정과 비용 통제를 위한 전 노선 운휴를 요구했다는 내용이 있다. 체불 임금도 제주항공의 주장과 달리 제주항공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내용도 수차례 언급됐다.

회의록 공개로 임금 체불에 책임이 없다던 제주항공은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다. 또 M&A 지연 책임이 선결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이스타항공의 책임이란 주장도 설득력을 잃자, 제주항공이 각종 쟁점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반박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은 7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공개된 자료와 주장은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에서 발표하거나 제공된 것인데 모호하게 '이스타 측'이라고 표현했다"며 "마치 이스타항공이나 계약 주체인 이스타홀딩스에서 계약 내용을 유출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맞섰다. 이어 "이스타항공은 두 계약 당사자가 신의성실과 기밀유지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인내와 책임 있는 행동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상호 신뢰가 깨졌다는 제주항공 발표는 사실상 노 딜을 선언한 것”이라면서 “제주항공이 지속해서 언급한 선행조건 해소 요구를 이스타항공이 지킬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이 지난달 26일에 이어 임시 주주총회를 재차 열었지만 무산되면서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불발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스타 항공은 이날 주총에서 발행 주식 총수를 1억주에서 1억5000만주로 늘리는 정관 일부 변경안과 신규 이사 3명 선임, 신규 감사 1명 선임 안건 등을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제주항공 측에서 이사와 감사 후보자 명단을 전달하지 않으면서 선임안은 상정되지 못했다. 사진은 6일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뉴스1

이스타항공이 지난달 26일에 이어 임시 주주총회를 재차 열었지만 무산되면서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불발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스타 항공은 이날 주총에서 발행 주식 총수를 1억주에서 1억5000만주로 늘리는 정관 일부 변경안과 신규 이사 3명 선임, 신규 감사 1명 선임 안건 등을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제주항공 측에서 이사와 감사 후보자 명단을 전달하지 않으면서 선임안은 상정되지 못했다. 사진은 6일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뉴스1

D-Day는 7월 15일

앞서 제주항공은 지난 1일 이스타항공 측에 10일(10영업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오는 15일까지 제주항공이 인정하는 선결 조건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공식적으로 계약 해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었다.

제주항공이 요구한 선결 조건 이행을 위해선 최소 800억원의 자금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월에서 5월까지 임직원 체불임금(240억원), 협력사 조업비, 공항 시설사용료, 이스타항공의 태국 현지 총판인 타이이스타젯이 항공기를 임차하는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이 채무(약 3100만 달러)를 지급 보증한 사안 해소 등이 포함돼 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 입장에선 해결 불가능한 조건이다.

제주항공은 이날 내놓은 입장문에서도 “선행조건 해소를 요구했고 이행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서 “이스타항공 측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 최종구 대표가 6일 오전 강서구 이스타항공에서 신규 이사, 감사 선임을 위해 열린 임시 주주총회가 무산된 뒤 주총장에서 나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주총은 지난달 26일과 마찬가지로 제주항공이 이사와 감사 후보자 명단을 전달하지 않아 무산됐다. 연합뉴스

이스타항공 최종구 대표가 6일 오전 강서구 이스타항공에서 신규 이사, 감사 선임을 위해 열린 임시 주주총회가 무산된 뒤 주총장에서 나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주총은 지난달 26일과 마찬가지로 제주항공이 이사와 감사 후보자 명단을 전달하지 않아 무산됐다. 연합뉴스

정부만 쳐다보는 제주ㆍ이스타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M&A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정부까지 나섰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3일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차례로 만나 교착 상태에 빠진 M&A 성사를 당부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제주항공이 명확한 인수의지를 보일 경우 국토부가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최대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제주항공도 이날 입장문에서 정부 지원 필요성을 언급했다. 제주항공 측은 “선행조건 이행이 지체되는 동안 코로나19로 인한 항공 시장의 어려움은 가중됐고, 양사 모두 재무적인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이번 인수에 대해서도 ‘동반 부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나, 정부 지원도 결국 국민의 세금인 만큼 견실하게 회사를 운영해 갚을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산업은행은 제주항공에 이스타항공 인수를 전제로 17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 정부가 추가 지원금을 줄 수도 있어 인수 포기를 쉽게 밝히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허 교수는 “김 장관이 공개적으로 인수를 독려한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라며 “금융당국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고, 특혜 시비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일단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하고, 이후 자구 노력에 상응하는 추가 지원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중단 및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중단 및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가 포함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정의당, 참여연대 등과 함께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항공을 규탄하고 정부의 해결을 촉구했다. 8일엔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총력 결의 대회도 연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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