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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조원 들여 190만명 고용, '한국판 뉴딜'…‘어떻게’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5년까지 국고 114조원을 직접 투자하고 민간과 지자체까지 포함해 약 160조원을 투입하겠다. 2022년까지 약 89만개, 2025년까지는 약 19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이같은 내용의 ‘한국판 뉴딜’의 밑그림을 직접 발표했다. 국민보고대회란 형식을 빌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사진은 거대하다. 앞으로 5년간 한 해 평균 20조원 넘는 나랏돈을 풀어 국내 전체 취업자 수(올 5월 기준 2693만 명)의 7%(190만 명)에 이르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구상이다.

저성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까지 겹치며 지난 1년 사이 40만 명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진(5월 취업자 수 감소 폭 전년 비 39만2000명) 현실을 감안하면 단비 같은 정책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가려는 목표만 있다. 목표에 이르기 위한 방법인 '어떻게'가 빠져 있다. 이날 발표에 대한 시장과 학계의 반응이 기대보다 걱정으로 기운 이유다.

기존 정책의 재탕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종합 계획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내용은 지난달 1일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경방)’에서 예고한 틀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방 발표 당시에도 전 교실 와이파이 구축, 주택 스마트 전력망 확대, 신재생에너지 기반 확산 등 대책의 대부분이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부처 별로 기존에 추진하던 정책을 재포장하거나, '한국판 뉴딜'이란 문패에 걸맞지 않은 정책까지 포함한 백화점식 나열에 그쳤다는 비판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발표한 세부 대책에서 달라진 점을 찾기는 힘들었다. 고용ㆍ사회 안전망 안건에 포함된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와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 역시 관련 부처가 이미 발표했던 내용이다. 구문에 가깝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 돈을 풀어 일자리를 만든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 설계됐다는 비판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 돈으로 만드는 일자리는 결국 저임금 단순 일자리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예산이 끊기면 결국 사라질 일자리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민간 기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구상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국민보고대회에 함께 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한국판 뉴딜은 재정 투자가 중심”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규제 혁파와 제도 개선 과제도 함께 추진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날 공개된 종합계획을 뜯어보면 어떤 규제를 어떻게 풀어간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찾기 힘들다.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예산만 쓰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정부의 생각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며 “규제를 강화하면서 현금을 써 일자리를 만들려 한다”고 주장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용 위기 상황에서 소득 주도 성장 기조를 일자리 주도 성장으로 바꿔간다는 방향 자체는 맞다”면서도 “문제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안은 보이지 않는데 겉으로 보이는 일자리 수만 늘리려고 대책을 급조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국비 기준으로만 114조원에 이르는 추가 재원 마련 방안도 정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이뤄진 세 차례 추가경정예산, 경기 침체로 줄어드는 세수로 인해 나랏빚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판 뉴딜이 제 효과는 내지 못하고 오히려 ‘재정 구멍’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용하 교수는 “한국판 뉴딜 실행을 위해 억지로 목표를 정해놓고 ‘언제까지 얼마만큼 돈을 쓰라’고 정부부처를 통해 강요하면 재정 누수, 예산 집행의 비효율로 이어질 위험이 오히려 더 크다”고 주장했다.

세종=조현숙ㆍ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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