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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타이거 우즈도 한국서 자랐다면 골프 그만 뒀을 것"

중앙일보

입력

김주형. [사진 KPGA]

김주형. [사진 KPGA]

KPGA 군산CC 오픈에서 18세의 신예 김주형이 우승하고 19세 김민규가 2위에 올랐다. 스타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 남자 골프에 단비 같은 존재다. 특기할 점은 두 선수 모두 어릴 때 한국을 떠났다는 거다. 김주형은 두 살 때, 김민규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럽 3부투어에서 뛰었다.

해외파 10대 선수의 KPGA 1, 2위 우연일까

국내 성인 대회에서 1, 2등을 한 두 10대 모두 해외파인 게 우연일까. 선수 후원사 간부인 A씨는 “외국으로 나간 선수들은 큰 꿈을 꾸고, 모든 걸 걸고 도전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배수진을 치는 게 반드시 도움만 되는 건 아니다.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여유 있는 집안에서 즐기면서 자란 박인비의 사례를 보면, 절박한 사정이 성공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김민규. [사진 KPGA]

김민규. [사진 KPGA]

한국의 교육열은 최고다. 한국오픈 우승자인 김대섭 DS팀 원장은 “한국 주니어 선수들은 재능 면에서 뒤지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일찍 외국에 나간 아이들이 국내에 있는 또래보다 열심히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에 있는 골프 선생님의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세계를 점령한 여자 선수들을 키운 바로 그 코치들에게 남자 선수들도 배우고 있다.

물론 운동할 여건은 좋지 않다. 4계절 훈련이 어렵고 주니어 선수 할인이 거의 없어 골프장 이용이 부담된다. 그래도 이겨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같은 토양에서 여자 선수들은 훌륭하게 자란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장은 두 귀 사이 6인치(뇌)라고 했다.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의 주니어 대회는 매번 같은 코스에서 한다. 상상력보다는 코스와 그린 암기력 측정에 가깝다.

코스 안에 OB도 많다. 샷 거리가 길지 않은 여자 선수들은 별문제 아니지만 남자 선수들에겐 큰 장애물이다. 성인이 되어 국제무대에서 겨루려면 어릴 때부터 장타를 쳐야 하는데 OB 말뚝이 무섭다.

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니 스코어만 잘 내는 골프를 지향한다. 골프계에는 “타이거 우즈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OB 때문에 중고연맹전 예선 통과도 못 하고 골프 그만뒀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남자 선수 부모에겐 농담이 아니다.

그래도 주니어 시절 잘하던 선수들이 많았는데 성인이 돼서 기대만큼 빛을 못 본다. 한국 남자 프로 대회는 숫자도 작지만, 코스도 평범하다.

나상현 해설위원은 "단조로운 플레이만 해도 되는 코스여서 선수들이 코스 공략이나 기량을 늘릴수 있는 환경이나 마인드 셋이 없어진다"고 평했다. 여자 선수들은 프로가 된 후 어려운 코스에서 경기하면서 발전하는데 남자 선수들은 정체다.

Q스쿨 제도가 후진적이다.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하므로 실력이 있어도 한 번 삐끗하면 올라가기 어렵다. 군대도 가야 해서 마음이 급한데 하부 투어가 활성화되지 않아 나갈 대회도 적다.

그러다 보니 연습장에서 스윙에만 집착한다. 그러다 스윙 분석 증후군에 빠지기도 하고 연습을 위한 연습만 하다가 레슨프로가 된다.

자율성도 문제다. 한국에서는 청소년기 부모가 따라다닌다. 남자 선수들은 스무 살 때쯤, 여자 선수들은 20대 중후반이 되어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려 한다.

골프 마인드 아카데미 임영희 원장은 “20세 이후 여러 가지 외부 방해요소를 접하게 되는데, 청소년기 자율적으로 결정한 경험이 없어 절제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해외파가 치고 올라오는 게 우연만은 아니다. 골프 아카데미 B원장은 "남자 코스와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국내파 남자 골프 선수들이 성장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성호준 골프전문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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