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생활 없는 '섹스리스' 부부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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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마흔 두 살의 주부.대학교수인 남편의 아내이자 아들과 딸의 엄마다.우리는 신도시에 아파트를 부부 명의로 갖고 있고,주말에는 외식이나 드라이브를 한다.

남편은 다른 남자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자상하다.친구들은 나보고 “남편복을 타고 났다”며 부러워한다.하지만 나는 남편과 성관계를 가진지 2년이 넘는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울증이 심하다.남들은 ‘사치병’이라지만 과연 나는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2. 서른 여덟살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대학원에서 만나 결혼한 지 11년 됐다.함께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각자 학교·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친구였고 집에서도 더할나위 없는 룸메이트다.하지만 우리는 부부라기 보다 오누이 쪽에 가깝다.신혼 초 열달 동안 몇 차례 관계를 가진 외에 지난 12년간 우리는 손만 잡고 잤다.당연(?)히 아이도 없다.

국내에도 섹스리스(sexless)로 인한 성트러블이 높아지고 있다.성클리닉이나 성상담소에는 부부간 ‘회수’에 불만을 가진 상담이 끊이질 않는다.

정신과 전문의 설현욱박사는 “해외에서도 섹스리스 커플은 약 20%에 이른다”며 “성트러블만으로 이혼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이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섹스리스 커플이란 오랜기간 섹스를 하지 않는 부부를 가리키는 말.학술용어가 아닌만큼 회수의 기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일반적으로 1년에 1∼2회 정도면 섹스리스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섹스리스의 가장 큰 원인은 배우자의 성기능 장애.발기부전과 조루 혹은 성불감증이 호르몬 또는 심인성에 의한 성기피증·성욕저하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성관계를 기피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극소수지만 전문가들은 부부가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서도 같은 취미를 갖고 원만한 부부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부부 중 한 사람이 관계를 기피해 불만이 축적되는 경우다.40대 초반의 주부 K씨는 “성문제를 제기하자 남편이 ‘당신처럼 섹스를 입에 올리는 여자는 없다’며 벌컥 화를 냈다”며 “성 관련 얘기는 우리 부부의 금기 사항”이라고 말했다.

섹스는 부부생활의 필수일까,선택일까.이 대목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비뇨기과 전문의 이윤수박사는 많은 섹스리스 부부들을 접해오면서 오히려 섹스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점을 강조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섹스는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섹스를 즐기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라며 “어떤 이는 섹스중독증처럼 집착하지만 어떤 이는 섹스 아닌 다른 일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설박사는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단다.그는 “부부의 정서적 친밀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잖은 것이 바로 서로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또 그는 “성적인 문제를 유치하다고 보는 고학력·전문직 가운데 성기피증 환자들이 많다”며 “서로의 본능을 존중해주며 성적 만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커플이 건강한 부부”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처방은 섹스리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달라는 것.성에 대한 대화를 피하지 말고,상대방의 욕구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부부는 나이가 들어서도 성적인 매력을 가꿔야 하며,남성은 신체적인 건강미를,여성은 자신의 성감을 향상시키는 노력도 해야한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부부 중 한사람이라도 부부생활에서 불만족이나 짜증이 축적되고 있다면 무엇이 원인인지 밝혀내려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며 “섹스의 회수보다 부부 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점검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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