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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 항공주 팔고 천연가스 11조 베팅…그 뒤엔 중국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마침내 버핏이 움직였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 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과 저장시설 기업을 사들이는 데 5일(현지시간) 97억 달러(약 11조1600억원)를 썼다.

미국 천연가스 가격은 2000년 이후 최저, 그런데 천연가스 운송-저장 기업 인수 #중국,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 약속..수요-가격 급등할수도 #코로나 위기 초기에 항공주 처분해 입방아에 오르다 천연가스 시장에 역발상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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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 기간 침묵한 뒤였다. 늘 버핏은 경제위기 초기에 움직였다. 그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직전 골드먼삭스에 50억 달러(약 5조7500억원)를 베팅했다. 위기 순간 싸게 사서 나중에 비싸게 처분하는 게 그의 투자 공식 가운데 하나였다.

코로나 위기 와중엔 Fed가 버핏의 발목 잡아  

버핏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현금 1372억 달러(약 157조7800억원: 3월 말 기준)를 쌓아두고 있었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 졸탄 포자 매니징디렉터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연방준비제도(Fed)가 정크본드까지 사들이는 시장에선 인수합병(M&A)이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미니언에너지로고

도미니언에너지로고

실제 Fed의 공격적인 회사채 인수 때문에 실적 전망은 좋지만, 일시적으로 돈줄이 마른 기업이 매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버핏이 자의반타의반 침묵했던 이유다.

20여년만에 다시 입방아 대상이 돼 

그 사이 버핏은 여러 사람의 입방아 대상이었다. 그는 버크셔해서웨이 올 1분기 분기실적을 발표하면서 아메리칸·델타·사우스웨스트·유나이티드항공 등 미 4대 항공주를 모두 처분했다. 수백억 달러 손실을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버핏의 처분 뒤 미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은 항공주가 반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버핏이 항공주를 처분한 것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버크셔해서웨이(A주) 주가(달러)

버크셔해서웨이(A주) 주가(달러)

심지어 몇몇 월가 사람들은 그의 나이(89세)를 들먹이며 ‘투자의 감이 떨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그에겐 수모였다.
90년대 이후 세 차례 시장 소외
사실 버핏이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촌평의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닷컴열기가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 전통 가치주를 고집했다.

그 바람에 버크셔해서웨이 주가는 90년대 말 전후 눈에 띄게 하락했다. 당시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버핏이 나이 들어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며 “버크셔해서웨이가 시장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버핏은 닷컴 붕괴를 통해 자신의 투자 철학과 판단이 옳았음을 결과적으로 입증했다.

버핏은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도 소외를 경험했다. 이번에도 닷컴거품 때와 비슷하게 위기를 통해 건재를 과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찰의 위력을 발휘하며 나중에 비싸게 팔기 위해 ‘싸게 사들이는’ 베팅을 공격적으로 벌였다.

버핏의 투자 역사를 보면, 코로나 위기는 세 번째 소외다. 다만, 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승패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는 장기 투자를 한다.

지금 미 천연가스 시장은 위기 중 

버핏은 도미니언에너지가 갖고 있던 파이프라인 1만2390km와 가스 저장시설 약 250억m³를 손에 넣었다. 버핏이 에너지 기업을 사들이기는 처음이 아니다.

미국 천연가스 선물시세(달러)

미국 천연가스 선물시세(달러)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는 미드아메리칸에너지와 NV에너지, 퍼시픽콥유틸리티 등을 거느린 중간 지주회사다. 에너지 부문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캐나다에도 천연가스 등을 판다. 지난해 버크셔해서웨이 전체 순이익 239억7000만 달러 가운데 12%(28억5000만 달러) 정도를 담당했다. 이날 버핏이 사들인 천연가스 운송과 저장 회사는 버크셔해서웨이 에너지 부문의 중요한 포트폴리오다.

그런데 요즘 미국 천연가스 시세는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시세만을 보면 천연가스 시장이 ‘죽음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천연가스는 미국 난방 연료 가운데 25% 정도다. 시장의 기본적인 크기는 형성돼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중국 변수가 있다. 중국은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인 IHS마킷의 이대진 연구위원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미ᆞ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천연가스 수입을 중요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버핏은 가격이 천연가스 바닥을 맴돌고 있는 순간 미ᆞ중 무역갈등 변수까지 고려해 베팅한 셈이다.

다만, 버핏은 천연가스 채굴보다는 파이프라인과 저장에 비중을 둔 기업을 인수했다.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와중에 돈 번 사람은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라 청바지 장사였다는 역사적 교훈을 활용한 듯하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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