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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혐의 벗었는데 징계 착수하자 극단선택 교사…공무상 사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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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1일 전라북도교육청 앞에서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부안 상서중학교 송경진 교사의 사망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8월 31일 전라북도교육청 앞에서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부안 상서중학교 송경진 교사의 사망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교육청이 징계에 착수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에 대해 법원이 ‘공무상 사망’을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고(故) 송경진 교사의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순직 유족 급여를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학생들과의 신체접촉에 관해 일련의 조사를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안과 우울 증상이 유발돼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인과관계가 있다”며 공무상 사망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의혹 제기 이후 송 교사와 유족이 호소한 억울함의 상당 부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의 탄원서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교육센터는 피해 여학생들을 면담해 진술 내용을 확인하는 등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기존의 진술서만을 근거로 판단했다”며 “이에 망인은 깊은 좌절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내사 종결에도 직위해제 처분을 받은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망인의 사망은 죄책감이나 징계의 두려움 등 비위행위에서 직접 유래했다기보다는, 수업 지도를 위해 한 행동이 성희롱 등 인권침해 행위로 평가됨에 따라 30년간 쌓은 교육자로서 자긍심이 부정되고, 더는 소명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봤다.

전북 부안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송 교사는 2017년 4월 일부 학부모가 자신에 대해 '여학생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추행 의혹에 휩싸였다.

학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조사를 벌였으나 '학생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추행 의도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내사 종결했다.

그러나 전북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직권조사를 벌여 '송 교사가 학생들의 인격권과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북교육청에 신분상 처분을 하라고 권고했다.

직권조사를 전후 학생들은 '다른 선생님이 교무실로 데려가 모두 적으라기에 칭찬해주신 것도, 다리 떨면 복 떨어진다고 한 것도, 모두 만졌다고 적었다', '수업 잘 들으라고 어깨를 토닥이고 팔을 두드리신 것 같다', '선생님의 억울함을 풀고 다시 출근하게 해 달라'는 등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학생인권교육센터의 판단은 달랐다.

결국 전북교육청은 같은 해 8월 징계 절차에 착수했고, 송 교사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현재의 전수민 변호사는 이날 “공무상 재해에 대해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법원 결정으로 유족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리고 송 선생님의 명예가 회복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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