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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꺼도 잡는다…中, 시장 간 30만명에 "검사 피하면 처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베이징 신파디 농산물 도매시장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신파디 농산물 도매시장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베이징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당신은 5월30일 이후 신파디 도매시장에 다녀간 적이 있다”

베이징, 빅데이터 활용해 방문자 30만 명 추적 #“부정확한 내용 신고시 처벌” 강제 조사 나서 #“근처도 안 갔는데” 무차별 개인정보 이용 논란도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사태를 막기 위해 베이징시가 광범위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과기일보(科技日報)에 따르면 베이징시는 감염 위험 그룹의 위치와 경로를 분석하기 위해 2차 확산의 진원지인 신파디(新发地)도매시장을 다녀간 시민 30여만 명을 빅데이터로 추려냈다.

베이징시 빅데이터 분석 자료. 5월29일~6월12일 신파디 시장을 방문한 2430명이 베이징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이중 91명이 상하이에 있다. [과기일보 캡쳐]

베이징시 빅데이터 분석 자료. 5월29일~6월12일 신파디 시장을 방문한 2430명이 베이징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이중 91명이 상하이에 있다. [과기일보 캡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5월29일~6월12일까지 베이징 신파디 도매시장을 찾은 사람 중 2430명이 베이징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허베이성 팡산시 480명, 바오딩시 344명, 톈진시 235명, 상하이 91명 등 19개 도시였다. 인원수가 특정됐다는 건 구체적인 신원과 위치 추적이 완료된 상태라는 의미다.

신파디 시장을 다녀간 사람에게 발송된 문자메시지. "베이징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당신은 5월30일 이후 신파디 도매시장에 다녀간 적이 있음. 북경시 방역 당국의 요구에 따라 즉시 외출을 중지하고 관련 정보를 올릴 것.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지 않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됨"이라는 내용이다. [과기일보 캡쳐]

신파디 시장을 다녀간 사람에게 발송된 문자메시지. "베이징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당신은 5월30일 이후 신파디 도매시장에 다녀간 적이 있음. 북경시 방역 당국의 요구에 따라 즉시 외출을 중지하고 관련 정보를 올릴 것.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지 않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됨"이라는 내용이다. [과기일보 캡쳐]

이어 확인된 30여만 명에게 대량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북경시 방역 당국의 요구에 따라 즉시 외출을 중지하고 관련 정보를 올릴 것.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지 않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해당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성명,주소,신분증 번호 등 개인 정보와 함께 신파디 시장 방문 시점과 증상,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입력하라고 돼 있다. 거짓 정보를 입력했다 처벌받을 수 있으니 사실상 강제 조사인 셈이다. “곧바로 핵산검사를 실시하고 늦을 경우 당국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문자메시지에 링크된 인터넷 주소로 들어가면 "조사표"의 9가지 문항에 답해야 한다. 신파디 시장 방문 일자, 증상, 핵산 검사 여부 등이다. 박성훈 특파원

문자메시지에 링크된 인터넷 주소로 들어가면 "조사표"의 9가지 문항에 답해야 한다. 신파디 시장 방문 일자, 증상, 핵산 검사 여부 등이다. 박성훈 특파원

중국 빅데이터 회사인 중커슈광(中科曙光) 수석엔지니어인 송화이밍(宋怀明)은 이같은 빅데이터 수집이 휴대폰 기지국의 신호 데이터를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GPS를 끄더라도 기지국에 전송된 휴대폰 신호를 통해 위치 추적이 가능하며 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라는 것이다. 베이징시 위생당국이 신파디 시장 방문객 빅데이터 수집 방법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개인 통신 정보를 활용한 신파디 시장 접근자 확인으로 베이징시는 코로나19 감염자 조기 발견에 성과를 냈다. 지난 11일 추가 확진자 발생 후 보름째인 26일 11명을 추가해 현재 누적 확진자는 280명이다. 이중 99.8%가 신파디 시장에 다녀간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선 추적을 통해 2, 3차 감염자 확인에 나선 결과다.

광범위한 빅데이터 조사에 불안감을 표시하는 중국 시민들. ’버스를 타고 신파디 시장에서 떨어진 고속도로를 지나간 게 전부인데, 빅데이터에 따라 검사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위), ’빅데이터에 근거해 검사 대상 통보를 받았다. 다른 지역에 밥먹으러 간 것 뿐인데 당황스러웠다"(아래)고 적었다. [웨이보 캡쳐]

광범위한 빅데이터 조사에 불안감을 표시하는 중국 시민들. ’버스를 타고 신파디 시장에서 떨어진 고속도로를 지나간 게 전부인데, 빅데이터에 따라 검사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위), ’빅데이터에 근거해 검사 대상 통보를 받았다. 다른 지역에 밥먹으러 간 것 뿐인데 당황스러웠다"(아래)고 적었다. [웨이보 캡쳐]

그러나 사전 고지도 없는 무차별적 개인 정보 활용을 놓고 중국 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추적 범위가 너무 넓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네티즌은 “버스를 타고 신파디 시장에서 떨어진 고속도로를 지나간 게 전부인데, 빅데이터에 따라 검사받으라고 연락이 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 역시 “빅데이터에 근거해 검사 대상 통보를 받았다”며 “다른 지역에 밥 먹으러 간 것뿐인데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한국 역시 지난 5월12일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당시 해당 지역을 다녀간 것으로 보이는 1만905명의 명단을 확보해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적이 있다. 당시 박원순 서울 시장은 “경찰청과 통신사의 협조를 통해 어제와 오늘에 걸쳐 기지국 접속자 명단 전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4월 24일∼5월 6일 사이 매일 자정부터 오전 5시 사이 이태원 클럽ㆍ주점 5곳 일대에 30분 이상 체류한 인원이 대상이었다. 당시 박시장은 개인 정보 유출을 우려해 “인권단체와 협력해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핫라인을 개설할 것”이라며 “개인정보가 방역만을 위해서 사용되도록 철저히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개인 통신 정보 활용이 제한된 탓에 구글은 사용자들의 키워드 검색에 기반을 둔 ‘구글 트렌드’라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가령 ‘독감’이라는 키워드 검색이 특정 지역에서 많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지역에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는 신상 정보를 배제한 결과값만 확인할 수 있어 개인 정보 침해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

지난 1월 우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한 고속철 승객 450명의 명단이 인터넷에 유출됐다. [남방도시보 캡쳐]

지난 1월 우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한 고속철 승객 450명의 명단이 인터넷에 유출됐다. [남방도시보 캡쳐]

현재 중국은 국가 차원의 공공 데이터 관리에 대한 법률 규정이 없다. 때문에 개인 정보 보호 유출에 대한 불안감도 큰 편이다. 실제 지난 1월 6~21일 우한에서 다른 도시로 고속철을 타고 이동한 승객 450명의 신상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우한이 봉쇄된 1월 23일 전 우한을 빠져나온 대학생, 일반 시민들의 이름,신분증번호,휴대폰번호,목적지 등의 정보였다. 당시엔 우한에서 나온 사람들이 코로나19 보균자처럼 취급되고 있던 때였다. 신상 정보가 순식간에 퍼져나가면서 정보가 공개된 사람들의 피해와 항의가 빗발쳤다.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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