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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에티오피아에 10년 기부…‘학도병 지킴이’ 치과의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규원 원장(사진)이 지난 2일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써달라며 1000만원을 보냈다. 심석용 기자

이규원 원장(사진)이 지난 2일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써달라며 1000만원을 보냈다. 심석용 기자

“내가 남에게 한 좋은 일은 모래에, 남이 내게 한 좋은 일은 바위에 써야 합니다.”

인천시 중구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이규원(58) 원장은 23일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원장은 지난 2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을 위한 성금 1000만원을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투게더에 보냈다. 2010년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에게 처음 1000만원을 보낸 이래로 11번째 기부다. 매년 익명으로 10년여간 보낸 기부금이 어느덧 1억원을 넘어섰다. 이 원장은 “에티오피아 군인 6000명이 남의 나라 전쟁(한국전쟁)에 참전해 200여명이 전사했는데 바위에 적어 오래 기억하며 감사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이 에티오피아 기부를 시작한 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곤궁한 상황에 부닥쳐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자 황실 근위병을 중심으로 지원군을 보냈다. 종전 이후 시간이 흘러 이들도 퇴역군인이 됐다. 현재 생존한 300여명 중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 원장은 “에티오피아는 5인 가족 한 달 생활비가 4만원이고 한 가구당 1년 생활비가 50만원이다. 내가 1000만원을 보내면 20가구가 1년간 살 수 있다”며 “그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편안히 살고 있는데 기부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학도병 아버지’ 뜻 기려 참전관 설립

이규원 원장의 아버지 이경종씨는 인천 상업중 3학년이던 1950년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심석용 기자

이규원 원장의 아버지 이경종씨는 인천 상업중 3학년이던 1950년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심석용 기자

이 원장의 아버지 이경종(86)씨는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0년 중학교 3학년이던 이씨는 학생 2000여명과 함께 부산으로 20여일간 걸어가 자원입대했다. 같이 입대한 이들 중 200여명이 전쟁통에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종전 후 생존자 대부분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씨는 1996년 7월에서야 참전용사 증서를 받았다.

이 원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학도병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본업 외 시간을 쪼개 학도병을 재조명하는 작업에 나섰다. 전국에 흩어진 아버지의 옛 전우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을 녹취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와 친했던 양모씨가 강원도에서 전사한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이 원장은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운영 중인 치과 건물에 ‘인천 학생 6·25 참전관’을 열었다.

작은 공간으로 시작한 참전관은 이제 전사자를 추모하는 ‘추모의 벽’과 생존자를 기록하는 ‘추억의 벽’ 등 테마 공간을 갖춘 곳으로 규모가 커졌다. 참전관 내부는 각 학도병의 사연이 담긴 기록으로 가득찼다. 이 원장은 “참전관을 운영하는데 매년 8000만원 정도를 쓰지만, 아깝지 않다”며 “올해 10월 확장 이전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아버지의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녹취해 책으로 엮어냈다. 심석용 기자

이 원장은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아버지의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녹취해 책으로 엮어냈다. 심석용 기자

“참전용사 잊히지 않길”

학도병 재조명에 나선 이규원 원장 덕분에 소년병 46명과 학도병 46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심석용 기자

학도병 재조명에 나선 이규원 원장 덕분에 소년병 46명과 학도병 46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심석용 기자

이 원장은 최근 ‘인천학생 6.25 참전사’ 집필에 몰두해 있다. 학도병의 이야기를 엮은 이 책은 현재 4권까지 나왔다. 수집한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5권과 6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외국은 참전용사를 각별히 대우하고 기념비가 있는 마을도 많은데 고향인 인천에 학도병을 위한 기념비도 없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며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호국보훈의 달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학도병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한 기부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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