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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전쟁에 밀린 ‘4000억 트위스트’···한남3구역, 패자 더 빛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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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3구역 재개발 시공사로 선정된 업체가 제시한 조감도. 작은 사진은 현재 모습.

한남3구역 재개발 시공사로 선정된 업체가 제시한 조감도. 작은 사진은 현재 모습.

“승자보다 패자가 더 주목받았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1조9000억원 한남3구역 시공사 수주전 #패배한 업체들의 아이디어 시도 돋보여 #OS요원 등 개별 접촉 여전 아쉬움

재개발 공사비로 역대 최대인 1조9000억원이 걸린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총회 결과를 두고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규제 강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라나19) 등으로 차분하게 치러진 이번 수주전에서 패배한 업체들의 실패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공사비 절감  

정비사업 공사비는 주요 분양가 상승 요인이다. 공사비가 정비사업 조합이 실제로 부담하는 사업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조9000억원 공사비가 걸린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총회가 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br〉

1조9000억원 공사비가 걸린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총회가 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br〉

서울시는 사업승인 내용을 기준으로 조합에서 예정 공사비를 제시하고 시공사를 뽑도록 했다. 시공사 선정 후 공사비가 뛰어 조합 부담이 늘어나고 분양가도 오르는 사례가 잇따르자 규제한 것이다.

그동안 업체들은 수입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공사비를 최대한 높여 조합이 제시한 금액으로 썼다. 수주전은 공사비 이외 부분의 경쟁이었다.

한남3구역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가 1조9000억원이었고 업체들이 제시한 금액은 1조6600억~1조9000억원으로 최고 10% 넘는 2000억원 넘게 차이 났다.

1조6600억원을 써낸 업체 관계자는 “공사비를 줄이는 게 사업비를 낮춰 조합에 실질적인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호화스럽고 비싼 벽지나 주방기기를 설치하지는 못해도 이 금액으로도 충분히 강남 아파트 못지않은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관 ‘화장’ 거품을 뺀다는 말이다.

사실 한남3구역이 한강 옆 경사지여서 공사비가 많이 드는 곳이다.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연면적 3.3㎡당 595만원)가 서초구 반포동 반포3주구(540만원) 등 웬만한 강남 재건축 사업장보다 높다.

위치도

위치도

강남 재건축 사업장은 이미 아파트 용지로 조성된 땅이어서 아파트를 지을 땅으로 조성하는 데 추가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 한남3구역은 5~22층으로 층수가 다양하고 동 개수가 197개에 달해 그만큼 공사가 어렵다.

설계 차별화

서울시의 규제에 따라 업체는 조합이 제시한 ‘원안설계’에서 ‘경미한 변경’ 범위를 벗어난 설계를 제시하지 못한다.

지난해 서울시는 과도한 설계변경을 금지하면서 “정비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층수 상향 등 과도한 설계변경을 제안하고 이로 인해 공사비가 부풀려지고 조합원 부담과 갈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경미한 변경’ 기준이 까다롭다. 전용면적은 손톱만큼도 달라져서는 안 되고 같은 전용면적 내에서 10%까지 내부구조 위치나 면적을 바꿀 수 있다. 내장재나 외장재를 바꿀 수 있다.

트위스트 아파트 투시도.

트위스트 아파트 투시도.

이런 규제 속에서 꽈배기 모양의 ‘트위스트’ 아파트 설계가 나왔다. 비틀면 시선이 엇갈려 앞 건물이 조망을 가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업체 측은 한강 조망 가구 수를 늘리기 위해 트위스트 설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4100억원을 들여 트위스트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다. 조합 원안설계 공사비로는 1조4000억원을 잡았다.

업체 관계자는 “원안설계 공사비를 최대한 아껴 트위스트 설계에 공을 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가 될 수도 있었던 트위스트 아파트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그들만의 리그'

패자들의 아이디어가 관심을 끌었지만 결과는 ‘돈 전쟁’이었다. 이주비·사업비 대여 금융조건 등이 표심을 좌우한 것으로 업계는 본다. 사업비 대여 자금이 업체에 따라 1조5000억~2조원으로 5000억원까지 차이 났다. 자금력이 승패를 가른 셈이다. 브랜드 인지도도 거들었다.

서울에서 정비사업 수주전은 이미 대형건설사들만의 리그다. 조합에서 시공사 선정 입찰 자격으로 요구하는 입찰보증금이 1500억원(한남3구역, 반포동 반포1단지)까지 올라갔다. 자금 여유가 없는 중견사는 입찰하지 못한다.

금품·향응 제공 논란은 없었지만 OS요원(홍보도우미) 등의 조합원 개별 접촉도 여전했다. 관련 법령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홍보할 수 있게 돼 있어 직접이든 전화 등을 통해서든 접촉해서는 안 된다.

금품 등을 주는 게 아니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홍보 효과 차이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사람 마음이 말 한마디 나눠본 데로 가지 않겠느냐”며 “규정대로 하는 업체는 손발이 묶인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서울시가 아무리 규제해도 한계가 있지만 ‘클린 수주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당사자가 있다. 조합이다. 이번 수주전이 조용한 데는 조합이 업체들에 외부홍보를 금지한 게 큰 역할을 했다. 수주전 초기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업체에 경고를 하기도 했다. 업체엔밥그릇을 뺏을 수 있는 조합이 가장 무서운 존재다.

조합이 직접 접촉 업체를 입찰에서 제외한다고 하면 과열 수주전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개별 접촉도 사라질 것이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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