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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도 노조 가입…친노동 속도 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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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 에서 열린 국무회의 및 수도권 방역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변선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 에서 열린 국무회의 및 수도권 방역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변선구 기자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법 개정을 추진한다. 퇴직 교원의 교원노조 가입도 가능하도록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난 속에 정부가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법 개정안을 다시 들고나오자 경영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다음 절차는 국회 심의·의결이다.

국무회의서 ‘노조관련 3법’ 의결 #재계 “노조로 힘 쏠림 심화할 것” #고위직 공무원도 노조 가입 허용 #국회 통과 땐 노사갈등 커질 우려 #재계 “코로나 와중에 추진 곤혹” #학계 “정부, 기업 유턴 돕는다더니 #노조 3법은 한국서 떠나라는 것” #고용부 “ILO 회원국도 하는 조치”

3개 개정안 모두 지난 20대 국회 때 논의를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다. 야당·경영계 등의 거센 반대에 부닥쳐서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176석을 차지한 ‘거여’ 구도라 정부·여당이 마음만 먹는다면 통과가 가능하다.

노조법 개정안엔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지금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 등 초기업 노조에 실업·해고자도 가입·활동이 가능하다. 이번에 개정하는 법안은 예외로 뒀던 기업 단위 노조 문호까지 실업·해고자에게 여는 내용이다.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게 한 규정도 없앤다. 단, ‘근로시간 면제 한도 내’란 단서를 달았다. 정부는 퇴직 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교원노조법도 개정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전교조는 합법 노조 자격을 회복한다.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뒀다는 이유로 2013년 전교조는 정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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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입 대상을 6급 이하로 제한하는 직급 기준을 삭제하는 공무원노조법 개정안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고위직 공무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소방공무원과 퇴직공무원의 노조 가입도 허용된다. 다만 지휘·감독자, 업무 총괄자 등 책임자급의 노조 가입은 여전히 제한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20대 국회에서 일괄 폐기됐던 법안인데, 이번에 다시 발의해 21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길을 다시 연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노조 관련 3개 법안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업자·퇴직자 노조 가입도 ILO 회원국이 다 허용하고 있는 조치라는 걸 내세우고 있다. 정부가 노조법 개정을 서둘러 재추진하는 속내는 또 있다. 유럽연합(EU)은 자유무역협정(FTA)에 규정한 ILO 핵심 협약 비준 노력을 정부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한·EU는 FTA 위반 여부를 가릴 전문가 패널을 구성했다. 코로나19로 절차가 중단 상태이긴 하다. 유엔 경제·사회·문화 권리 국제규약위원회도 ILO 핵심 협약 비준에 한국 정부가 소극적이라며 올 초 공개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강경파 해고자가 노조 들어와 임금협상 테이블 앉을 수도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9일 경총과 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이례적으로 공동성명까지 냈다. 4개 단체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로 인해 기업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최악의 경영 환경에 내몰려 있다”며 “이런 시점에서 ILO 핵심 협약 비준을 명분으로 기업이 가장 민감하고 곤혹스럽게 느끼고 있고, 노사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정부 입법안이 일방적으로 노조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서, 가뜩이나 대립적인 노사 간 갈등을 고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조 3법’ 정부 입법안 주요 내용

‘노조 3법’ 정부 입법안 주요 내용

예컨대 노조는 강경 노선의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들여 정식 노조원 자격으로 사용자 측과의 임금협상 테이블에 앉게 할 수 있다. 해고자 복직 등 무리한 요구를 하고, 노조를 투쟁 일변도로 이끌 수 있다. 다만 해고자나 실직자는 노조의 임원·대의원이 될 수 없다. ‘사업장 내 조합 활동은 효율적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하다’는 제한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이들의 상징성 때문에 노조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부당노동행위 고소·고발이 남발하고, 관행적 파업이 늘며, 강성 노조원 증가로 노사관계가 더욱 경직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가뜩이나 기울어진 노조로의 힘 쏠림이 심화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대신 경영계 요구를 개정 법안에 일부 반영했다. 해고·퇴직자의 기업 출입, 시설 사용에 대해서도 노사가 합의한 절차를 따르도록 했다. 노조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이 2년에서 3년으로 1년 늘어난다. 사업장 내 생산시설이나 주요 업무시설을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 행위는 금지된다. 이는 노동계가 ‘개악’이라고 비판하는 부분이다.

코로나19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노조의 지지를 얻고 있고, 또 수적으로 (유권자 중) 노조나 노조 가입자 비중이 크기 때문인지 노조 권한은 강화하는 반면, 경영의 애로사항에 귀를 기울여 줄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실과 맞지 않는 낡은 규범을 바꾼다는 관점에서 법안 개정이 추진돼야 하는데, 정당하게 해고된 근로자도 기업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가 최근 기업 유턴을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기업이 한국을 떠나는 가장 큰 문제는 노사 문제와 법인세”라며 “기업보고 떠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세종=조현숙·하남현 기자, 최선욱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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