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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돌때 초가집서 자가격리, 장원급제한 43세 선비를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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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을 소매 안에 넣을 수 있게 만든 ‘휴대용 동의보감’. [사진 국립전주박물관]

『동의보감』을 소매 안에 넣을 수 있게 만든 ‘휴대용 동의보감’. [사진 국립전주박물관]

조선시대 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살던 문인 정중기(1685∼1757)는 역병(전염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역병이 확산하자 매곡 지역(현 삼매리)으로 이주해 ‘간소(艮巢)’라는 서재를 짓고 공부에 몰두했다. 간소는 소박한 초가집이라는 뜻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가 전염병을 피하면서 학문에 매진한 셈이다. 정중기는 결국 43세에 과거에서 장원 급제를 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계를 떠나 매곡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했다.

‘선비, 역병을 막다’ 주제전 열려 #포켓용 ‘휴대용 동의보감’도 눈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쓰는 요즘 수백 년 전 ‘정중기식 거리두기’가 관심을 끌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23일 “상설전시실 2층 역사실에서 전염병에 대처하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역사 자료와 기록·유물 등 12점을 모아 전시하는 ‘선비, 역병을 막다’라는 주제전을 다음 달 31일까지 연다”고 밝혔다.

조선 선비 문화를 탐구할 목적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에는 조선 후기 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저술한 의학서 『마과회통(麻科會通)』에 담긴 가슴 아픈 사연도 소개된다. 『여유당전서』 『목민심서』 등 방대한 저술을 남긴 정약용은 슬하에 아들 여섯과 딸 셋을 뒀다. 그러나 천연두와 홍역으로 아들 넷과 딸 둘을 잃어 깊은 슬픔에 빠졌다. 정약용은 죽은 자식들과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 1797년 천연두·홍역 예방법을 다룬 의학서 『마과회통』을 완성했다고 한다.

본래 25권으로 된 허준의 『동의보감』을 요약해 소매 안에 넣을 수 있는 포켓북 형태로 만든 ‘휴대용 동의보감’도 눈길을 끈다. 배앓이를 할 때 따뜻하게 데워 배에 문질렀다던 ‘배밀이(도자기 재질 숟가락)’, 약재를 갈아 가루로 만드는 기구인 ‘약연’ 등 조선시대 의료 기구들도 볼 수 있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역병에 맞선 선비들의 현실 극복 의지와 사람 사이의 연대, 따스한 인간애를 담은 전시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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