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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도 나선 기본소득…"증세없이 20조" "월 3만원 불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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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정치권이 재차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지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현행 복지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기본소득의 효과에 대한 시각은 달랐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비해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취약 계층에 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원희룡 제주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원희룡 제주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한국식 기본소득 준비해야"

김종인 위원장은 2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 정책토론회'에서 ‘한국식 기본소득’을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을 때 미국의 직업 중 47%가 없어질 것”이라며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소비 능력이 반감하면 시장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빈곤율이 세계 2위(17.4%)”라며 “17~19세기부터 기본 소득 논의는 있었지만, 최근 선진국을 비롯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목전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량 실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희룡 지사는 “지금은 대전환, 대가속의 시대”라며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한 번의 의무 교육으로 국가 역할이 끝났지만, 이제는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역동적 발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이어 “국민의 기본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ㆍ소득을 보장하고 주택ㆍ의료 분야에 있어 각종 차별을 배제하는 경제 전반의 혁명이 필요하다”며 “시장의 기능만이 아니라 국가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찬성 측, "복지 중복 해소로 재원마련"

기본소득제 월 지급시 예상 재정 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기본소득제 월 지급시 예상 재정 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러나 실현을 놓고 벌어진 토론에서는 전문가의 공방이 오갔다. 가장 첨예한 건 재원 마련이었다. 장영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장은 “2017년 기준 정부의 복지 사업은 347개에서 2019년 356개까지 늘었지만, 중복 사업이 85개나 된다”며 “특히 2016년 중복 사례가 약 3만건으로 142억원이 소비돼 행정비용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복되는 복지 예산을 절감하면 기본소득 시행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소득 하위 90%에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언급하며 “(소득 상위) 10%를 걸러내는 행정 비용에 1600억원이 소요됐다”며 “연간 사회복지 예산이 180조원에 이르지만, 행정비용이 30조원에 달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경제싱크탱크인 LAB2050 이원재 대표는 고소득자가 많이 받아가는 '소득세제 비과세ㆍ감면'을 정비해 56조2000억원을 마련하고, 기본소득 역시 과세 소득으로 편성해 15조1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기존의 근로장려금(EITC)과 자녀장려금(CTC) 등 기존의 복지 재원을 통합해 50조2000억원, 지방정부의 세계잉여금 31조원 등 총 187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20조원 규모까지는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실행하고, 소득세제 비과세 40조원만 정비해 전 국민 월 10만원 규모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 3만원?…사각지대 해소부터"

기본소득제 연 지급시 예상 재정 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기본소득제 연 지급시 예상 재정 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러나 이는 대량실업과 노인빈곤 해결에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고령화로 소득 없는 노인이 늘어나며 시장 지니계수는 높아지고 있지만, 사회복지제도로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2011년 0.388에서 2018년 0.345로 개선되고 있다”며 “오히려 연금과 실업급여 등을 높여야 소득재분배 효과가 나타나는데, 전 국민이 똑같은 액수를 받는 것으로 어떻게 재분배 효과가 생기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증세 없이 20조원을 기본소득으로 주면 국민 개개인에게 월 3만원 남짓 돌아간다”며 “오히려 이를 현행 9조원 규모의 실업급여 재원(최대 180만원 수령) 혹은 14조원 규모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강하는 등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 쓰면 수령액을 2배로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아동수당 대상 선별 시 든 행정비용 1600억원은 현금이 아니라 작업 시간을 고려한 (가상의) 기회비용 개념”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본소득 찬성 측, "증세ㆍ재정 건전성' 동반돼야"  

기본소득 찬성 측도 증세와 재정 건전성 확보는 필수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원내대표는 “시민 재분배 기여금, 탄소세, 토지보유세 등 목적세 신설 등 정치인들이 재원 마련에 책임 있게 준비해야 한다”며 “연간 순증세는 108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장영신 연구실장 역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세재정을 개혁하고, 사회안전망 법률을 재편해야 한다”며 “이것이 없는 사회안전망 구축은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성장정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경제 규모를) 키워야 나눌 수 있는데, 키우자는 얘기는 없다”며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신용등급 하락→해외자본이탈→이자율 상승→기업 자본조달 비용 상승→일자리ㆍ세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찬성 측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역시 "누군가는 소를 잡아 와야 나눠 먹을 게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세율을 올리는 게 아니라 '파이'를 키우자는 윤 의원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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