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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권 살리려 집주인 들어오나, 은마 3000 세입자가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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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중 ‘대장주’로 꼽힌다. 이 아파트 단지의 4424가구 중 약 3000가구는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가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2년 이상 거주해야 분양권 자격 #세입자 내보내 전세대란 올 우려 #압구정동·목동 재건축도 영향권 #재개발은 해당 안돼 형평성 논란

정부가 발표한 6·17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집주인이 2년 이상 거주한 이력이 없으면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을 주지 않는다. 아직 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집주인은 전·월세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직접 들어가 살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 입장에선 집주인이 들어오면 집을 비워줘야 하므로 주변에 전세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재건축 사업의 초기 단계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양천구 목동 등에서도 2년 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집주인들의 불안감이 크다.

은마아파트는 6·17 대책에 따른 재건축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단계다. 올해 말까지 조합설립 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 집주인들에게 2년 거주 의무가 생긴다.

중앙일보가 은마아파트에서 표본으로 112가구를 골라 등기부등본을 통해 집주인의 거주 여부를 확인했다. 112가구 중 집주인이 사는 곳은 28가구(25%)였다. 나머지 75% 중 상당수는 집주인들이 2년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전·월세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재건축 규제 강화의 불똥이 전·월세 시장으로 튈 수 있는 이유다.

부동산업계에선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다른 아파트 단지도 집주인의 거주 비율이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 3주구 1600여 가구의 경우 집주인이 직접 사는 비율은 20% 정도다. 다만 이곳은 이미 조합을 설립했고 이달 초 재건축 시공사까지 선정했기 때문에 2년 거주 규제는 해당하지 않는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중대형 아파트 단지에선 집주인이 거주하는 비율이 좀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래도 실제로 거주하는 집주인은 절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 자격 같은 중요한 제도를 소급 적용하면 재건축 시장을 대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며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개발 사업엔 집주인의 거주 요건을 두지 않고 재건축에만 실거주를 요구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재개발 사업구역에서도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들인 뒤 실제 거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난 21일 재개발 시공사를 선정한 용산구 한남뉴타운 3구역에서 조합원 명부(2019년 3월 사업승인 기준)를 보면 80%가량이 다른 곳에 살고 있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단지의 주민들은 “실거주 요건을 적용한다면 비슷한 성격의 재건축·재개발 구분 없이 하는 게 맞지 않냐”고 주장한다.

주택임대사업자는 재건축 분양권을 받기 위해 2년 거주 요건을 채우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임대 의무기간(4~8년) 안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주인이 들어가면 30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에선 328가구(7%)가 여기에 해당한다. 국토교통부는 “구체적인 현황조사를 거쳐 (관련 내용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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