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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방사포·장사정포 위력···北 경고 '서울 불바다'의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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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또 ‘서울 불바다’를 들고 나왔다.

2017년 4월 25일 북한군 창건 85주년을 맞아 강원도 원산에서 열린 합동타격시위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2017년 4월 25일 북한군 창건 85주년을 맞아 강원도 원산에서 열린 합동타격시위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7일 논평에서 “입 건사를 잘못하면 이제 잊혀 가던 서울 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가해질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북한이 ‘서울 불바다’만 던지기 하면 한국 사회가 바짝 긴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서울 불바다’가 서울을 난리 통으로 만든 적이 있다.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할 특사교환 문제를 협의하는 제8차 실무접촉이 발단이었다. 이 자리에서 북한 측 박영수 단장(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은 이렇게 한국 측 대표단에 쏘아붙였다.

“대화에는 대화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불은 불로 다스린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서울은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송 선생(한국 측 단장인 송영대 당시 통일원 차관)도  아마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병부대들의 포사격대항경기를 지도했다. 이날 훈련에는 평사포와 곡사포, 122㎜ 방사포가 동원됐다. [조선중앙통신]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병부대들의 포사격대항경기를 지도했다. 이날 훈련에는 평사포와 곡사포, 122㎜ 방사포가 동원됐다. [조선중앙통신]

남북 실무접촉은 1993년 3월 12일 북한이 핵확산조약(NPT)을 탈퇴한다고 선언한 뒤 촉발한 1차 북핵 위기 와중에 열렸다. 남북은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실무접촉이 93년 10월 5일부터 8번째 이어졌다. 박 부국장은 한ㆍ미 연합군사훈련인 팀 스피릿(TS) 진행과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배치에 대해 트집을 잡으면서 말 폭탄을 터뜨렸다. 송 차관은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라며 “아니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라고 응수했다.

▶박영수= “그래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송영대= “전쟁 선언하는 거냐.”
▶박영수= “그쪽에서 전쟁 선언을 했다는 것,”
▶송영대= “전쟁 선언하는 거냐. 전쟁을 전쟁으로 대응한다?”
▶박영수= “그렇다.”

남북회담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을 꺼냈던 박영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 [중앙포토]

남북회담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을 꺼냈던 박영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 [중앙포토]

박 부국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서울은 난리가 났다. 라면과 같은 생필품은 매장에서 동이 났다. 사재기 때문이었다.

정작 박 부국장은 98년 2월 2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남북해외학자 통일회의에서 ‘서울 불바다’는 “‘북한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서울도 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뜻”이라며 와전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잘것없는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됐다”면서 “당시 남측에서는 우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유도하기 위해 정세를 격화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나는 그러한 논리에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박 부국장이 말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북한은 남북 관계가 나빠질 때마다 ’서울 불바다‘ 카드를 다시 꺼내 흔들었다. 그만큼 94년의 추억이 짜릿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을까.

핵 한 방이면 충분…쓰기엔 부담

북한은 서울을 단번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핵탄두를 단 미사일을 떨어뜨리면 ’게임 오버‘다.

국방연구원(KIDA)이 국방부 의뢰로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에 20㏏(1㏏은 TNT 1000t) 규모의 핵탄두를 탑재한 뒤 서울 도심 상공 100m에서 터뜨린 이후의 상황을 가정했다. 그 결과 폭심지 반경 1㎞ 안의 인구 90~100%가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심지에서 1~2㎞ 지역에선 10% 정도가 사망한다고 한다.

지난해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 이날 등장한 무기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조선중앙통신]

지난해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 이날 등장한 무기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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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전문 온라인 매체인 38노스는 북한이 15㏏ 핵무기로 서울을 타격하면 22만명의 사망자를, 250㏏로 공격하면 79만명의 사망자를 각각 낼 것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쓰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다. 미국의 확장억제력(핵우산) 보복을 각오하지 않는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버튼을 서랍 속에 집어넣어야 할 형편이다.

2016년 3월 북한군 훈련 모습. [조선중앙통신]

2016년 3월 북한군 훈련 모습. [조선중앙통신]

’서울 불바다‘ 뒷배는 방사포와 장사정포

그래서 북한에 ’서울 불바다‘의 도구는 핵이 아닌 방사포와 장사정포를 뜻한다. 방사포는 한국 육군의 다연장포를 말하며, 장사정포는 장거리 포격을 할 수 있는 야포다.

군사력 평가 전문기관인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펴낸 ‘2020 밀리터리 밸런스’에 따르면 북한은 방사포와 장사정포를 포함한 포병 전력 2만 6100여 문을 보유하고 있다. 방사포만 5500여 문이다.

지난 2018년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의 주체포. [조선중앙통신]

지난 2018년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의 주체포. [조선중앙통신]

2만 6100여 문이 모두 서울을 위협하는 건 아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거리 40∼60㎞ 수준인 170㎜ 장사정포는 150여 문, 240㎜ 방사포는 200여 문으로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 포를 모두 동원하면 산술적으로 1시간에 최대 1만 발을 쏟아부을 수 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은 지난해 장거리를 날 수 있는 발사체 5종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며 ”북한은 이 발사체들을 스텔스 전투기인 F-35를 배치한 청주 공항이나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 등 고가치 군사 목표물을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170㎜ 장사정포는 M-1978 자행포(자주포)와 M-1989 자행포가 있다. 곡산포라고도 불리는 M-1978 자행포는 일반 포탄의 경우 40㎞를 날릴 수 있고, 로켓추진탄(RAP)을 쏘면 60㎞ 거리의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

M-1989는 M-1978의 개량형이다. M-1978 자행포는 5분에 1~2발 쏠 수 있을 정도로 발사속도가 느린 게 단점이다. 170㎜ 장사정포는 북한의 군단 예하 포병부대에서 운용한다. 군사분계선(MDL) 10㎞ 이내에 배치돼 있다. 서울 시청과 잠실 종합운동장까지는 170㎜ 자행포의 사정권 안에 있는 셈이다.

발사중인 북한의 240mm 방사포

발사중인 북한의 240mm 방사포

북한의 240㎜ 방사포는 M-1985와 M-1989가 있다. M-1985는 12발을, M-1989는 18발을 한꺼번에 쏠 수 있다. 이 두 방사포의 사거리는 40㎞이다. 재장전에는 12분이 걸린다. 240㎜ 방사포나 170㎜ 장사정포엔 화학탄을 탑재할 수 있다.

‘서울 불바다’의 숨겨진 구멍들

하지만 240㎜ 방사포나 170㎜ 장사정포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한ㆍ미가 나름 대비를 해놨기 때문이다.

북한은 방사포와 장사정포를 동굴 속에 숨겨놓았다가 유사시 밖으로 꺼내 쏜다. 장사정포는 산의 앞면에, 방사포는 뒷면에 판 동굴에 배치한다. 사격 준비에서 발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방사포는 6분, 장사정포는 10발 기준 20~30분이 걸린다. 장사정포는 동굴 밖으로 꺼내 사격한 뒤 다시 집어넣을 때까지 20~30분 정도 무방비로 놓인다. 이때를 한ㆍ미가 대화력전으로 노린다.

북한군 새 장사정포 진지

북한군 새 장사정포 진지

한국군은 북한이  240㎜ 방사포나 170㎜ 장사정포를 숨겨 놓은 동굴을 전문적으로 때릴 수 있는 한국형 전술지대지 유도무기(KTSSM)를 개발했다. KTSSM의 공산 오차(CEP)는 1.5m다. 창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정확도다. 여기에 한ㆍ미의 항공 유도폭탄인 합동직격탄(JDAM), K9 자주포, 다연장포(MLRS)인 천무 등 대화력전 전력이 총출동할 경우 북한의 ‘서울 불바다’ 세력의 핵심은 반나절 정도면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군 당국은 예상한다.

북한의 240㎜ 방사포나 170㎜ 장사정포의 위력과 정확도도 문제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당시 북한은 76.2㎜ 평사포, 122㎜ 곡사포, 130㎜ 곡사포 170여 발을 사격했다. 이 가운데 80여 발이 연평도에 떨어졌다. 90여 발은 서해에 탄착한 셈이다. 또 80여 발 가운데 30%가 불발탄이었고, 해병대 연평부대 군사시설을 타격한 포탄도 30%에 불과했다. 장사정포는 공산 오차가 300m로 추정한다.

북한 장사정포 공격에 대비한 공군 대응태세 훈련. [연합뉴스]

북한 장사정포 공격에 대비한 공군 대응태세 훈련. [연합뉴스]

포격 당시 사망자 4명은 모두 외부에서 포탄의 파편에 희생됐다. 일반 가정집에 있었던 연평도 주민들 가운데 사망자는 없었다. 북한의 포탄 중 한 발이 해병대 건물 천장을 뚫고 들어왔지만, 내부 집기에 피해는 거의 없었다. 북한군 포탄의 위력과 정확도가 떨어지는 데다가 보관 상태도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240㎜ 방사포와 170㎜ 장사정포는 포격으로 수도권을 공황 상태로 빠뜨리려는 테러 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게 이른바 ‘서울 불바다’의 실체다.

류성엽 전문연구위원은 ”240㎜ 방사포와 170㎜ 장사정포는 북한에도 금싸라기 같은 전력”이라며 “유사시 북한은 우리의 반격 능력을 먼저 제거하려 할 것이며, 240㎜ 방사포와 170㎜ 장사정포의 우선순위는 군사 목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를 공격하려다 유탄이 근처 광화문에 떨어지는 경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한국을 향해 포문을 연다면 중국인과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의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 현재 서울에는 약 20만 명의 중국인과 약 1만 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포탄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피해갈 수 없다.

지난 2018년 2월 8일에 열린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자주포(자행포). [조선중앙통신]

지난 2018년 2월 8일에 열린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자주포(자행포). [조선중앙통신]

‘서울 불바다’는 곧 전면전

북한이 ‘서울 불바다’를 현실로 만든다면 사실상 전쟁을 피하기 어렵다. 한ㆍ미가 대화력전으로 240㎜ 방사포와 170㎜ 장사정포 상당수를 무력화할 수 있지만, 모두를 없애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 240㎜ 방사포와 170㎜ 장사정포의 포탄은 현재 요격이 힘들다. 만일 한 발이라도 민간인 밀집 지역에 떨어지면 피해가 클 것이다. 심리적 충격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그 한 발이 화학탄이라면 후폭풍이 엄청나다.

한국을 압박하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고 북한은 최근 말 폭탄의 수위를 높여가며 대적(對敵) 군사행동을 하나씩 실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서울 불바다’를 언급한 것이다.

북한이 혹시라도 협상의 지렛대로 서울 도심의 일부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 계획을 가졌다면 바로 접는 게 좋을 것이다. 단 한 발의 포탄이라도 서울에 떨어져 단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온다면 그것은 한반도에 또 다른 전면전 상황을 부르기 때문이다. 한ㆍ미가 북한이 두려워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오산을 북한이 하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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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평화라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 불바다'로 죄 없는 민간인의 생명을 담보로 잇속을 챙기려는 북한을 내버려 두자는 여론을 기대한다면 백일몽(白日夢)일 게다.

이철재·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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