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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밀담

‘사드 폭탄 돌리기’ 이젠 끝장을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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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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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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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놨던 폭탄이 다시 터지는 줄만 알았다. 다행히 도화선이 타들더니 바로 꺼졌다.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다. 남은 도화선이 꽤 길기 때문이다. 불똥이 옮겨붙으면 폭발할 우려는 여전하다. 경북 성주에 배치한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얘기다.

미국, 성주 사드 장비 전면 보강 #한국 ‘강화’ 아닌 ‘정비’ 선 긋기 #중국, 사드 목적 알면서도 트집 #MD 참여 논란 당당히 끊어내야

지난달 28~29일 주한미군은 한국 경찰의 엄호 아래 사드 기지에 장비를 반입했다. 기지 내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장비뿐만 아니라 사드 체계 장비도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국방부는 낡은 장비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라는 미국의 설명을 전했다.

사드라면 일단 경기를 일으키고 보는 중국은 비교적 조용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이 “중국은 미국이 한국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한다”고 언급한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중국이 ‘사드 문제’의 뚜껑을 닫은 것은 아니다. 전략적 승리를 위해 일시적으로 전술적 조치를 유보했을 뿐이다. 한국 안에서 사드 논란이 다시 일어나거나 한·미 관계의 틈이 보이는 순간 중국은 바로 사드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 할 것이다.

지난달 29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 경찰력이 지키는 가운데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장비를 실은 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국방부는이날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노후 장비를 교체하는 지상 수송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달 29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 경찰력이 지키는 가운데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장비를 실은 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국방부는이날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노후 장비를 교체하는 지상 수송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뉴스1]

도화선은 사실 한국이 제공했다. 2017년 사드 배치 이후 한국의 대중문화 수입을 끊는 한한령(限韓令) 등 비공식 제재가 나오자 한국은 ‘3불 입장 표명’을 중국에 전달했다. ▶사드의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 관계의 군사동맹 발전을 않겠다고 한 한국의 ‘약속’이었다는 게 중국의 견해다.

‘3불 입장 표명’은 결국 한국을 옥죄었다. 이번 사드 장비 교체를 두고 한·미가 말이 서로 다른 게 대표적 사례다. 우리 국방부는 “사드 체계의 성능 개량과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어떤 위협에도 대응하기 위해 능력을 계속 향상하고 있다”(미 국방부)라거나 “일부 사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했다”(미 국무부)는 식으로 성능 개량임을 거듭 밝혔다.

누구 말이 맞을까.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우선 미국이 한국을 속였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중대 사안인 사드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국방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또 다른 가능성은 한국과 미국이 모두 맞는다는 것이다. 미군이 새로 가져온 사드 장비가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있을 성능 개량을 대비한 ‘무엇인가’를 갖췄다는 가설이다. 한국은 현재를 얘기했기 때문에, 미국은 미래를 내다봤기 때문에 둘 다 정답이라는 논리다. 미국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후자 쪽으로 추가 기울어진다.

결국 국방부는 절반의 진실을 얘기한 셈이다. MD 참여 논란을 피하려는 속셈이다. 미국은 사드 체계와 패트리엇 체계를 연동하려고 한다. 사드 레이더로 패트리엇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패트리엇 레이더로 사드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계획이다. 이미 관련 예산이 나왔다.

사드 레이더가 포착한 북한의 미사일을 패트리엇 체계가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면 ‘북한판 이스칸데르’ 19-1 미사일(KN-23)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 19-1 미사일은 정상적인 탄도 궤도를 그리지 않고, 종말 단계에서 활강하다 갑자기 상승 후 하강 비행을 한다. 한·미의 요격 미사일을 피하는 수법이다. 사드의 AN/TPY-2 레이더는 19-1 미사일을 더 멀리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19-1 미사일의 정점 고도(30~40㎞)는 사드 미사일의 요격 고도(40~150㎞) 아래이기 때문에 요격은 패트리엇 미사일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도 패트리엇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군의 사드·패트리엇 연동→한국 패트리엇도 연동→한국의 미국 MD 참여라는 3단 논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국방부의 걱정거리로 보인다.

이는 기우(杞憂)다. 패트리엇은 사드보다 더 낮은 고도를 담당한다. 사드만 해도 한국의 3분의 2만 방어할 수 있다. 사드와 패트리엇은 미 본토를 지키는 MD와는 차원이 다른 무기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 사령관은 “중국도 사드가 결국 북한 대비용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중국은 한국 내 MD 참여 논란을 일어난 걸 지켜본 뒤 사드를 들고 나왔다. 사드가 한·미 관계를 흔드는 꽃놀이패란 걸 알아챘다”고 말했다.

다만, 사드와 패트리엇 연동이 이뤄지면 또 다른 요격 미사일의 연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나온다. 한번 해봤기에 다른 방법도 해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 같은 한·미 간 긴밀한 미사일 방어 협력을 싹부터 자르려는 중국의 노림수다.

한국은 이지스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함대공 미사일인 SM-3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ICBM을 쏠 경우 발사 직후 한반도 주변 상공에서 요격할 수 있다. ‘SM-3 구매’에 ‘MD 참여’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이유다. 이런 미사일을 사 오려고 하면서도, 중국을 의식해 MD와 상관없는 사드에 대해선 변명을 일삼는 국방부의 태도는 모순이다.

‘진실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폭탄을 가능한 뒤로 돌리는 것은 결코 해결 방안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으려면 사드·패트리엇의 연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중국에 알리는 게 상책이다. 우리 국방부에겐 벅찬 제언일까.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