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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말 따랐을 뿐인데…임대업자, 6·17 날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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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박모(53·서울 송파구 잠실동)씨. 지난 17일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충격에 빠졌다. 재건축해 짓는 새 아파트에 들어갈 생각으로 5년 전 매수했는데 계획이 물거품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6·17대책, 재건축 조합원 자격 강화 #2년 거주 힘들어 분양권 박탈될 판 #3년 전 임대사업자 등록 장려 정책 #은마·성산시영만 800여 명 피해 #“입주도 안한 검단 빈땅도 규제” #인천 주민들 청와대 청원 올려

정부는 6·17 대책에서 2년 이상 거주해야 분양 자격을 주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7년 말 정부의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발표를 보고 2018년 상반기에 임대 의무기간 8년의 임대주택으로 등록했다. 재건축까지 장기간 보유해야 하는데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종부세 면제와 양도세·임대소득세 감면 등 세금 혜택이 많았다. 임대 의무기간 동안에는 주인이 거주할 수 없다. 박씨의 경우 임대 의무기간이 끝나는 2026년 전에 분양하면 자격이 없다. 박씨는 “정부 정책을 성실히 따랐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6·17 대책이 과잉·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투기 억제를 이유로 규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기존 정부 정책과 엇박자를 내거나 규제 실효성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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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책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의 하나로 꼽히는 게 재건축 분양 자격 강화다. 이제까지 없던 거주 의무 요건을 추가했다. 2년 이상 살아야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실수요 기준으로 명시한 ‘실거주’를 재건축에도 적용한 것이다. 재건축 추진 단지는 지은 지 30년 이상 지나 낡은 데다 재건축 개발이익을 기대한 투자수요가 많아 주인 상당수가 실제 거주하지 않는다. 지방 거주자의 원정 투자가 몰린 곳도 재건축 단지다. 이달 초 시공사를 선정한 서초구 반포동 반포3주구 1600여 가구만 보더라도 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집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이번 대책에 따라 조합원 입주권을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집 주인이 들어가 살 수밖에 없지만 재건축 아파트를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주인은 거주 의무 요건을 채우기 어렵다. 임대 의무기간 동안에 임대하지 않고 주인이 거주하면 임대 의무 위반으로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국토부 임대주택 등록 현황 자료에 따르면 4424가구의 은마아파트에서 328가구가 임대주택으로 등록돼 있다. 이 중 70%가 넘는 234가구가 임대 의무기간 8년이다.

무인도 실미도는 묶고 신도시 김포는 빠져…“분양권 5000만원 상승” 벌써 풍선효과

정부는 서울 강남구 청담·삼성·대치동 및 송파구 잠실동 전역을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등의 6·17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18일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서울 강남구 청담·삼성·대치동 및 송파구 잠실동 전역을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등의 6·17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18일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의 본궤도에 오른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3710가구)에도 10%가 넘는 504가구가 등록 임대주택이다. 무리한 정부 대책이 저렴한 재건축 아파트 임대주택을 없애 서민의 주거 복지를 해칠 판이다. 은마아파트 전용 84㎡ 전세보증금은 주변 새 아파트의 절반 이하인 6억원 선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단지 거주 의무는 현실에 맞지 않고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과도 어긋난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대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보완책을 검토 중이란 입장이다.

정부가 대폭 확대한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의 선정 형평성도 도마에 올랐다. 시장에선 현실을 무시한 지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관련 법에 접경지역으로 명시된 양주시가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다. 규제지역에서 빠진 김포와 파주엔 신도시 등 대규모 아파트촌이 들어서 있다. 김포엔 2기 신도시인 한강신도시와 걸포·향산지구가, 파주엔 운정신도시·금촌지구 등이 있다. 김포·파주는 벌써부터 규제를 피한 수요가 몰리고 있다. 17일 대책 발표 후 하루 새 분양권 웃돈이 3000만~5000만원 뛰었다.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주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검단신도시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한 김모(48)씨는 “아직 입주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빈 땅이 투기과열지구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인천 무인도인 실미도도 조정대상지역에 들어가 규제 대상이 됐다는 비웃음 섞인 문구가 돌고 있다.

이서복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규제지역 선정의 형평성이 문제되면 정부 정책이 신뢰성을 잃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안장원·최현주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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