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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보상 놓고 유족간 분쟁…대법 “증손자는 소송자격 없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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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 연합뉴스

독립유공자 제1순위 유족 자격을 얻기 위한 한 유족 간의 법정 다툼이 대법원의 판단을 받고서야 결론이 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독립유공자 A씨의 증손자인 B씨가 ‘A씨와 그의 장녀 C씨의 친생자 관계를 확인해달라’며 낸 소송에 대해 ‘증손자는 소송 자격이 없다’고 판단, B씨의 상고를 18일 기각했다. 8족 이내의 혈족에게도 소송 자격을 부여하던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이다.

이들 유족 간의 다툼은 A씨가 사망한 후 2010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현행법상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은 유족 중에서도 선순위자 한 명에게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A씨에게는 장남 D씨와 장녀 C씨, 차녀 E씨 등 세 명의 자녀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2010년 이전에 사망해 A씨의 유족으로는 ▶D씨의 손자 B씨(A씨의 증손자) ▶C씨의 딸 F씨(A씨의 손녀) ▶E씨의 아들 G씨(A씨의 손자) 등 세 명만 남아 있었다.

이중 G씨가 가장 먼저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했다. 이에 F씨는 자신이 선순위자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고, 결국 유족등록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해 선순위 유족 자격을 얻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증손자인 B씨가 F씨는 선순위 유족이 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제적부(말소된 호적의 기록)상 C씨가 A씨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C씨가 A씨와 친생자 관계가 아님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C씨가 A씨의 친딸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2심은 C씨가 A씨의 친딸이 아니라도 B씨가 선순위 유족이 될 수 없다며 각하 판단했다. 만약 F씨가 선순위 유족 자격을 잃더라도 가장 나이가 많은 G씨가 선순위 유족이 되기 때문에 B씨가 소송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르면 나이가 가장 많은 손자녀만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다.

B씨는 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자신이 현행 민법상 친족관계에 해당하므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민법 777조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를 법률상 친족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민법 777조상 친족관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친생자 관계의 존부를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대법원 판례는 유지될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전원합의체는 “2005년 민법 개정으로 호주제가 전면적으로 폐지되면서 부부와 자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로 재편되고 호적부를 대신한 가족관계등록부에도 개인을 중심으로 가족관계변동사항이 기록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가족형태도 이미 핵가족화돼 민법 제777조의 친족이 밀접한 신분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법률적, 사회적 근거가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친생자 관계의 존부를 다툴 수 있는 제3자의 범위를 넓게 보는 것은 신분질서의 안정을 해치고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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