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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vsEU ‘구글세’ 협상장 박차고 나간 므누신…한국에도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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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디지털 세 부과 대상으로 논란이 한창인 기업으론 구글ㆍ페이스북ㆍ아마존 등이 있다. AFP=연합뉴스

디지털 세 부과 대상으로 논란이 한창인 기업으론 구글ㆍ페이스북ㆍ아마존 등이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세금’ 협상이 결렬됐다. 양측은 당초 올해 6월까지 관련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지난해 합의했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ㆍ뉴욕타임스(NYT) 등은 17일(현지시간)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주 EU 회원국 중 프랑스 등 6개국의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협상의 교착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FT는 “므누신 장관이 디지털세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는 표현을 썼다.

미국의 무역 협상 최책임자 격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같은 날 하원 세입위원회에 출석해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며 “(미국은) 더 이상 협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브뤼노 르메르 재무장관도 므누신으로부터 해당 서한을 받았다고 확인하면서 “프랑스는 앞으로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디지털 세금 협상에서 발을 뺐다고 17일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AFP=연합뉴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디지털 세금 협상에서 발을 뺐다고 17일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AFP=연합뉴스

므누신 장관은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FT는 므누신 장관이 서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 동안엔 협상을 보류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의 모니카 크롤리 재무부 대변인도 “전 세계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 주력하는 동안, 국제 조세 관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의 (디지털세) 논의를 중단하자고 미국이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코로나19 휴전'인 셈이다. 더 큰 싸움을 앞두고 숨고르기를 하는 모양새다. 므누신 장관은 "실제로 EU가 미국 기업들에 디지털 세를 물릴 경우, 미국도 상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였다.

디지털세는 수년간 미국과 EU 간의 뜨거운 감자였다. 미국에 본사를 뒀지만 세계 각국에서 영업 중인 디지털 거대 기업인 구글ㆍ아마존ㆍ페이스북 등이 과세 대상이다. 요지는 이 기업들이 EU에서 회원국 국민으로부터 막대한 영업 및 광고 매출을 올리면서도, 정작 세금은 본사가 있는 미국에만 내는 상황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한국의 ‘구글세’ 논란과 결이 같다. EU 중에서도 아일랜드 등은 반대하지만 프랑스ㆍ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 세 도입 주장이 강하다. 특히 프랑스가 반발의 선봉에 서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OECD는 지난해 10월 디지털 세 법안을 마련해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담의 의제로 제출했다. 이는 미국의 반발을 불렀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당시 보도에 따르면 므누신 장관은 OECD에 서한을 보내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국제적 합의 도출 전에는 개별 국가들이 디지털 세 부과를 유예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창립자의 가면을 쓰고 시위 중인 유럽 시민. 페이스북에도 EU 국가들이 과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지로 시위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창립자의 가면을 쓰고 시위 중인 유럽 시민. 페이스북에도 EU 국가들이 과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지로 시위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므누신 장관은 나름의 중재안도 마련했다. 일명 ‘세이프 하버(safe harbor)’ 방안인데, 핵심은 각 기업이 미국뿐 아니라 각국의 다중 과세를 당하지 않도록 기업에 어떤 국가에 세금을 낼 것인지 선택지를 주자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므누신 장관은 당시 ”과세권을 어느 국가가 가질지에 대해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세이프 하버 체제’가 필요하다”며 “이런 접근법이면 기업들의 우려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G20 재무장관들이 유일하게 합의를 했던 건 “내년(2020년) 6월까지 합의를 이루자”였는데, 이번 협상 결렬로 그마저도 깨졌다. 프랑스 등 일부 EU 국가도 디지털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강경하다. ‘강 대 강’ 대치 국면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앞으로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이는 한국의 삼성ㆍ현대 등 세계 각국이 무대인 기업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협상이 어떻게 조정되는지에 따라 아마존ㆍ구글ㆍ페이스북과 같이 당초 타깃이 됐던 기업 외에도 과세 대상이 넓어질 수 있다.

미국이 프랑스에 보복 관세를 위협한 지난해 12월 미국 알링턴의 한 프랑스 와인 판매대. AFP=연합뉴스

미국이 프랑스에 보복 관세를 위협한 지난해 12월 미국 알링턴의 한 프랑스 와인 판매대. AFP=연합뉴스

프랑스와 미국은 실제로 디지털세 관련 보복전에 돌입한 적도 있다. 지난해 7월, 프랑스 상원이 포문을 열었다. “연 매출 7억5000만 유로(약 1조235억원) 이상이면서 프랑스에서 2500만 유로 이상의 이익을 거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프랑스에서 발생한 연 총 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한다”는 법안을 의결하면서다. 이에 USTR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무역법 301조에 따라 불공정한 무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반발했다. 실제로 미국의 와인ㆍ치즈ㆍ화장품에 보복 관세를 물릴 움직임을 보이자 프랑스가 “1년간 유예하겠다”고 꼬리를 내렸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의 1년 유예 조치가) 아주 흡족하다”는 트윗을 올렸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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