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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회의 사회적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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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겉만 봐선 속을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용어도 그렇다. 최근 회자되는 ‘사회적 가치’가 대표적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10년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ISO 26000)을 5년에 걸쳐 완성했다. 정부와 기업 등 각종 조직에 사회적 책임을 통합해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게 표준의 핵심이다. 사회적 가치는 여기서 가지치기한 개념이다.

국내에서 사회적 가치가 대중 사이에 들어온 건 지난해다. SK그룹이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임원 평가에 반영한다고 발표하면서 관심이 모아졌다. 원조는 따로 있다. 세계 1위 화학 기업 바스프(BASF)다. 바스프는 경영을 통해 창출한 ‘사회적 가치(value to society)’를 측정해 매년 재무제표와 함께 발표한다. 1년간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유로화로 환산한 게 특징이다. 10년 가까이 사회적 가치 측정에 천착한 바스프는 엄격·정확성 등 8가지 원칙도 내놨다. 핵심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기준 마련”과 “사회적 가치 측정 산식(算式)의 필요성”이다. 주목할 건 후자다. 측정 없는 사회적 가치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는 게 바스프의 결론이다. A와 B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둘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면 사회적 가치는 실체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사회적 가치법을 제출한 과정을 놓고 뒷말이 많다. 보좌진이 4박 5일간 국회 의안과 앞을 지킨 결과라고 한다. 법안엔 대통령 직속 ‘사회적 가치 위원회’ 신설 등이 담겼지만 정작 가치 측정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모호함은 둘째치고, 1호 법안을 위해 의안과 앞을 지킨 보좌진의 밤샘은 사회적 가치 창출 측면에서 보면 마이너스다. 박 의원이 법안에서 강조한 근로조건의 향상에도 어긋난다. 만약 박 의원이 보좌진 대신 밤샘을 자청했다면, 나아가 4년마다 반복되는 1호 법안 밤샘 경쟁이 올해 사라졌다면 창출된 사회적 가치는 더 컸을 거다.

이참에 21대 국회가 창출할 사회적 가치를 산식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이런 식이 될 거다. 국회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민생법안 발의 수X본회의 참석율X예산 심의 일수)÷(몸싸움 횟수+보좌진 밤샘횟수). 대부분의 국민이 이 산식에 찬성할 거라 확신한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