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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다 통합당에 뺏길라"…與 잠룡들 기본소득 놓고 기싸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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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페이스북에 ’전국민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전국민 고용보험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은 박 시장이 지난달 9일 코로나19 관련 긴급브리핑을 여는 모습.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페이스북에 ’전국민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전국민 고용보험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은 박 시장이 지난달 9일 코로나19 관련 긴급브리핑을 여는 모습. [연합뉴스]

기본소득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자 유력한 차기 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박 시장은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고용보험이 더 정의롭다”는 입장이지만, 이 지사는 “망설이는 사이 기본소득이 미래통합당의 어젠다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 시장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난과 위기는 취약한 계층에 가장 먼저, 깊이 온다.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썼다. 박 시장은 또, “24억원 예산이면 전 국민 기본소득의 경우 모두에게 월 5만원씩 지급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의 경우 실직자에게만 월 100만원씩 지급한다”며 “대기업 정규직도 매월 5만원을 지급받는 것이 정의로운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시장이 기본소득과 고용보험을 비교하고 나선 건 이재명 지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 정무라인 관계자는 “이 지사가 첫 단계 기본소득을 얘기하며 25조원을 언급했는데, 전 국민 고용보험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이라며 “이 지사와 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5일 “단기목표로는 연 5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만들면 연 재정부담은 25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문재인 대통령이 던진 화두이기도 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3주년 취임 연설에서 주장한 첫 번째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다. 이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 고려된 발언”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최고 결정권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 비전을 더 강력하게 주창하는 게 저처럼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들의 책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쿠팡 물류센터 집단감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쿠팡 물류센터 집단감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박 시장의 입장과 달리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과 전 국민고용보험이 대립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지사 측 한 관계자는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하는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우선순위나 재원 문제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용보험은 문 대통령이 의제를 가지고 말씀하시니 확대 시행하면 되는 문제지만, 기본소득은 초창기 논의 단계”라며 “여야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같지만 섬세한 부분에 있어 충돌되기 때문에 토론을 통해 일반화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어젠다를 이어가기보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에서도 노인 기초 연금을 구상했지만, 표퓰리즘이라는 비난 때문에 망설이는 사이 박근혜 후보에게 선수를 빼앗겼다”며 “기본소득을 놓고 기초연금과 똑같은 일이 재현되고 있다. 어느새 기본소득은 미래통합당의 어젠다로 변해가고 있다”고 썼다. 또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는 경제정책이며, 다음 대선의 핵심의제일 수밖에 없다”라고도 주장했는데, 그가 기본소득과 대선을 직접 연관 지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 외에도 정치권에선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와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로 기존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위 관계자)고 선을 그었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백가쟁명식 논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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