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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한이 두달 지났지만 감사원은 왜 월성1호기 감사를 뭉개나

중앙일보

입력

2012년 11월 13일 월성 1호기의 모습. [연합뉴스]

2012년 11월 13일 월성 1호기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한을 두달 가량 넘기면서도 감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서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현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감사원이 결과 발표를 일부러 뭉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수원은 2018년 6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지방선거 이틀 뒤에 나온 결정이었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보다 3개월 앞서 작성한 자체 분석 보고서에선 월성 1호기를 정지하는 것보다 계속 가동하는 것이 3707억원 이득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국회는 지난해 9월 감사원에 한수원의 결정이 타당했는지 판단해달라며 감사를 요구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감사원은 감사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감사 결과를 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최대 2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지난 2월이 제출 시한이었지만, 감사원은 그때까지 실무적인 감사 절차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원자력정책연대 및 탈원전반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지난 4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에서 감사원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를 늦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최재형 감사원장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원자력정책연대 및 탈원전반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지난 4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에서 감사원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를 늦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최재형 감사원장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감사원은 지난 4월 초쯤 감사보고서 초안을 감사위원회에 보고했다. 감사위원회는 4·15 총선을 앞두고 4월 9·10·13일 감사보고서 의결을 위한 회의를 열었지만, 의결은 보류됐다.

관련 회의를 잇따라 열고서도 발표가 지연되자 뒷말이 무성해졌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기술적인 감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포항 지진에 대한 감사의 경우 1년 걸렸다. 월성 1호기 감사도 기술적으로 복잡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빠르게 감사를 진행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있어 보류 결정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재형 감사원장과 5명 감사위원간의 충돌을 의결 보류의 주원인으로 꼽는다. 한수원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두고 현 정부에서 임명된 친여 성향의 감사위원들이 제동을 걸면서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는 의혹이다. 감사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총선 기간 휴가를 떠난 최 원장의 행보도 이런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월성 1~4호기 운영변경허가안 등을 다루는 제111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가 열린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원안위 건물 앞에서 탈핵시민행동 등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위). 같은 시간 원자력노동조합연대 회원들 역시 원안위 앞에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아래). [연합뉴스]

월성 1~4호기 운영변경허가안 등을 다루는 제111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가 열린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원안위 건물 앞에서 탈핵시민행동 등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위). 같은 시간 원자력노동조합연대 회원들 역시 원안위 앞에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아래). [연합뉴스]

하지만 감사원은 1일 “5명의 감사위원뿐만 아니라 최 원장도 모두 현 정부 들어 임명되었는데, 감사위원들이 현 정부에서 임명되었다는 것이 감사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는 것은 감사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최 원장은 감사보고서 보류 결정이 난 직후인 지난 4월 20일 월성 1호기 감사를 맡아왔던 이준재 공공기관감사 국장을 산업금융감사 국장으로 발령냈다. 대신 이 자리에 유병호 전 심의실장을 앉혔다. 이 국장은 임명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아 이례적인 인사이동이다.

특히 최 원장은 인사 당일 실·국장 회의에서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월성 1호기 감사에서 정부 눈치 보지 말라는 취지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감사원 관계자는 “성역 없는 감사는 최 원장이 취임 초부터 했던 발언”이라고 했다.

최재형 감사원장 [연합뉴스]

최재형 감사원장 [연합뉴스]

감사원 독립성 논란이 증폭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국민께 알려드릴 내용이 있다면 감사원에서 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청와대가 어떤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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