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3억6000만원짜리 죽책, 4억원 백자...고미술 경매 뜨거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혜인빈상시죽책. 총 60개의 대나무 조각으로 이뤄졌다. [케이옥션]

경혜인빈상시죽책. 총 60개의 대나무 조각으로 이뤄졌다. [케이옥션]

[케이옥션]

[케이옥션]

대나무로 만들어진 18세기 죽책 13억6000만원, 18세기 청화백자 4억원, 그리고 십장생도 2억 1000만원···.

27일 케이옥션 낙찰품 3가지

지난 27일 케이옥션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된 고미술품들이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지켜온 금동불상 2점이 경매에 나온 날 두 불상은 끝내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유찰'됐지만, 이들 고미술품은 조용히 새 주인을 찾았다. 간송 불상 때문에 경매에 시선이 쏠린 날 의외로 좋은 성과(?)를 거두어 눈길을 끌었다.

1755년에 제작 왕실 의례품

경혜인빈상시죽책은 대나무 조각 6개가 1첩이며 모두 10첩으로 구성됐다.

경혜인빈상시죽책은 대나무 조각 6개가 1첩이며 모두 10첩으로 구성됐다.

우선 13억6000만원에 낙찰된 죽책의 공식 명칭은 '경혜인빈상시죽책(敬惠仁嬪上諡竹冊·1755)'이다. 세로 2.5cm의 자그마한 책자 크기이지만 책을 모두 펼치면 가로 길이가 183cm에 달한다.

죽책이란 왕실에서 책봉, 존호·시호·휘호를 올리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대나무(竹簡)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를 가리킨다.

이번에 나온 죽책은 조선 선조(1552~1608)의 후궁이었던 인빈 김씨 (仁嬪 金氏·1555~1613)에게 시호를 올리고, 인빈의 신위를 올린 사당과 무덤을 각각 격상시켜 이장하고 의례를 봉헌하면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인빈 김씨는선조의 후궁으로 총애를 받아 4남 5녀를 낳았고, 이중 정원군(1580~1619)은 조선 16대 왕 인조(1623~1649 )의 아버지로 1623년 인조반정(이귀, 김유 등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위에 앉힌 사건) 이후 원종으로 추종됐다.

조선 21대 왕 영조(1724~1776)는 1755년 인빈의 사당을 짓고 묘소를 이장하면서 죽책을 만들었고 청자각·비각·석양·석호·석마 등을 새롭게 조성했는데, 이때 기록이 '경혜인빈상시봉원도감의궤'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죽책문은 영돈녕부사 이천보가 지었고, 이조판서 신만이 썼다. 죽책은 당시 최상품의 대죽을 재료로 60개의 대나무 조각을 6개씩 1첩으로 엮어 총 10첩으로 만들어졌다. 첩마다 11~13자의 글자를 새기고, 이금(금박가루를 아교에 개어 만든 특수 염료)으로 모든 글자를 채워 장식했다.

케이옥션 측은 "경혜인빈상시죽책은 왕실 의례의 산물이며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와 장인이 협업해 제작한 왕실 공예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에 이 죽책은 시작가가 10억원이었으며 열띤 경합 끝에 13억 6000만원에 낙찰됐다.

18세기 청화백자

백자청화수복강녕문호. 가로 폭이 24.2cm이며 높이가 27cm다. [케이옥션]

백자청화수복강녕문호. 가로 폭이 24.2cm이며 높이가 27cm다. [케이옥션]

연유를 알 수 없으나 '수복강녕'의 '녕'자가 독특하게 쓰여 있다. [케이옥션]

연유를 알 수 없으나 '수복강녕'의 '녕'자가 독특하게 쓰여 있다. [케이옥션]

백자청화수복강녕문호(白磁靑畵壽福康寧文壺)는 18세기 금사리에서 제작한 백자호다. 이 시기의 백자는 후대의 분원리 백자보다 고아한 미감을 띈 것으로 유명하다.

가로 폭 24.2cm, 높이 27cm인 이 백자에는 가늘고 섬세한 난초 문양이 그려져 있고, 항아리 어깨 부분에 이중 완권을 그려 그 안에 수복강녕(壽福康寧)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수복강녕은 오래 살고 행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다만 연유를 알 수 없으나 '녕'자가 '寧'이라 쓰여 있지 않고 다르게 쓰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케이옥션은 "이 백자는 옅은 푸른색의 청화안료와 고아한 담청색이 잘 어우러져 있다"면서 "조선 백자 고유의 담박미가 최절정에 달한 시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소개했다. 이 백자는 경매 시작가 4억원을 낙찰됐다.

석지 채용신의 장생도  

석지 채용신의 장새도. 1921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케이옥션]

석지 채용신의 장새도. 1921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케이옥션]

석지(石芝) 채용신 (蔡龍臣 ·1850~1941)의 장생도도 이번 경매에서 열띤 경합 끝에 낙착돼 눈길을 끌었다. 1921년에 그려진 이 장생도는 10폭짜리 그림으로 세로가 118cm, 가로 356cm에 이른다.

채용신은 조선 말기~근대기에 활동한 화가로 특히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으며, 15세를 넘어서는 산수 · 화조 · 누각 등 그리지 못하는 분야가 없었지만 처음엔 화업을 생업으로 삼지 않았다. 1886년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 1888년의 사과(司果)로부터 시작해 의금부도사를 거쳐 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1899년까지 무관으로 일하고, 후에 어진을 봉안하고 있던 선원전에 모실 태조어진을 모사하라는 명을 받고 주관화사로 발탁됐던 그는 무엇보다도 초상화로 실력을 떨쳤다. 1901년 고종의 어진을 그리고 1906년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한 뒤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며 항일투사 등의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이번 경매 출품작은 채용신의 초상화가 아닌 장생도다. 소나무, 학, 사슴 등만 아니라 원앙, 꿩. 토끼, 원숭이 등 십장생과 관계없는 동물들도 총출연한다. 또 두 그루의 소나무를 교차시켜 화면을 분할한 방식도 눈에 띈다. 케이옥션은 "궁중 장식화 풍에서 벗어나 석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구성으로 평가된다"고 소개했다.

케이옥션은 "이런 형식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십장생도'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면서 "이번 '장생도'는 그 작품보다 1년 이른 1921년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석지 화풍 연구의 주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5000만원에 경매가 시작돼 치열한 경합 끝에 2억 1000만원에 낙찰됐다.

이은주 기자의 다른 기사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