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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없습니까?" 경매 나온 간송 불상 2점, 주인 못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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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 소장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왼쪽)과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연합뉴스]

27일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 소장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왼쪽)과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연합뉴스]

"경매 시작가는 15억원입니다. 15억원, 15억원···없습니까?"
27일 오후 5시 57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경매장에서 손이천 수석경매사가 5월 경매를 마무리하며 '특별 경매'에 나온 두 금동불상의 새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현장에서도, 전화로도 응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잠시 정적 끝에 손 경매사가 "땅"하고 망치를 내려치며 외쳤다. "유찰입니다."

27일 케이옥션서 응찰자 '0'명 #국립중앙박물관 매입 가능성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후손이 경매에 내놓은 보물 불상 2점이 모두 유찰됐다.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열린 경매에서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이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경매에 나왔으나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간송 후손 소유인 불상은 간송미술관이 관리해왔지만, 재정난을 이유로 매각을 결정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해온 국가지정문화재가 공개적으로 경매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심이 집중됐다.

이에 따라 간송미술관의 품을 떠나 새 주인이 누가 될지 관심을 보았던 두 점의 금동불상은 일단 향방이 다시 불투명해졌다. 이런 가운데 두 불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들일까?

지난 21일 간송미술관이 재정난 때문에 금동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았다고 알려지자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에 재산을 바쳐가며 모아온 우리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불상 구매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해 유물 구입비 예산은 40억원 정도. 두 점의 경매 시작가만 해도 30억원에 달해 박물관이 사들이기도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날 경매에 앞서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순수 민간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회장 신성수 고려산업 회장)는 박물관이 불상을 사들일 뜻이 있다면 비용을 보태겠다는 의향을 밝히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유력한 새 주인으로 떠올랐다.

경매를 앞두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케이옥션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면 경매 자체가 취소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케이옥션 관계자는 “박물관과 협상 여부를 떠나 이미 공개시장에 나온 작품이기에 민간 유통 질서를 존중하기 위해 경매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기타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응찰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사전 협상설을 일축했다.

한편 이날 유찰 소식이 알려지자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 안타깝지만, 우리로선 이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보물인 데다, 간송 선생의 뜻이 담긴 박물관에 소장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일단 유찰이 됐으니 이에 대한 (매입) 협상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왜 아무도 안 샀을까? 

박물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이날 경매가 유찰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많았다. 첫째는 심리적인 부담 때문이다. 박물관의 관계자는 "워낙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경매품이라 누가 나서 낙찰을 받기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개인이 적극적으로 매입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격이다. 전문가들이 감정하고 평가한 가격이지만 일부 고미술상인들 사이에서는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인사동에서 고미술품을 거래하는 한 상인은 "가격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지만, 특히 현재 국내에는 불상을 수집하는 개인은 없다"며 "여러모로 개인보다는 기관이 나서야 하는 경매품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셋째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고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삼성미술관리움(삼성문화재단)이 최근 새 소장품을 들이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열린 케이옥션 경매에서 유찰된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경매 시작가 15억원이었다.[케이옥션]

28일 열린 케이옥션 경매에서 유찰된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경매 시작가 15억원이었다.[케이옥션]

앞쪽이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연합뉴스]

앞쪽이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연합뉴스]

7~8세기 조각 양식 보여줘

이날 경매에 나온 두 금동불상은 모두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제284호인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에 확립되는 통일신라 조각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매우 중요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금동여래입상은 얼굴이 선명하게 투각된 팔각 연화대좌(대좌:불상을 올려놓는 대)위에 정면을 보고 당당한 자세로 서 있다. 출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38cm에 달하는 크기는 우리나라에서 동 시기에 제작된 금동불상으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왼쪽). [연합뉴스]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왼쪽). [연합뉴스]

보물 제285호인 금동보살입상은 높이 약 19㎝로, 신라 지역(거창)에서 출토된 유일한 불상으로 꼽힌다. 보살이 손을 앞으로 모아 보주를 받들어 올린 모습과 양옆으로 뻗은 지느러미 같은 옷자락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 불상은 특히 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호류사의 구세관음(救世觀音)과 특히 유사한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가 경매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보물 제1210호로 지정된 청량산괘불탱은 35억 2000만 원에 사립박물관을 운영하는 개인에게 팔린 적이 있다. 2012년 케이옥션에 출품된 보물 제585호의 서화첩인 ‘퇴우이선생진적첩’은 34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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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강혜란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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