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클리닉] 4. 음란물 중독

중앙일보

입력

요즘 아이들은 아이답지 못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초등학교 여학생이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 구애´ 의 글을 올리는 정도는 흔한 풍경이 됐다. 성적으로 조숙한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원하는 음란 사이트를 언제나 열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성과학연구소가 PC통신과 인터넷을 이용하는 중3~고3 재학생 1천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1%가 음란 정보와 포르노 정보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47%는 성의식에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우연히 친구집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음란물을 접하게 됐어요. 지금은 거의 매일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예요. 책상 앞에 앉아도 그 생각만 하면 집중이 잘 안됩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보는 여자나 친구 누나, 심지어 담임 선생님을 봐도 알몸이 떠올라 참기 힘들 때가 많아요. "

한 중3 남학생의 고민이다. 예전에는 사진과 비디오가 음란물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아주 간편하고 손쉽게 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실제 상담을 해보면 이런 음란물에 중독돼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음란물은 대부분 비정상적인 성행위의 묘사나 가학적.변태적인 장면을 자극적으로 꾸며놓은 내용들이다. 보는 사람에게 성적인 흥분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내용 속에는 온갖 폭력적인 요소가 가미돼 있어 언뜻 보면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과 동떨어지고, 그릇된 성적인 환상에 빠지기 쉽다. 음란물을 계속 접하다 보면 은연중에 사람의 성(性) 을 쾌락의 도구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음란물에 등장하는 여배우처럼 모든 여자가 음탕할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렇게 비뚤어진 성의식은 성범죄의 주요 동기가 된다.

우리 아이들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주변에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무조건 보지 말라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가 절제하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동아리 활동이나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은 그러한 공상을 덜 하게 해줄 뿐 아니라 심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아이들이 따로 떨어진 공간이 아닌, 공개적인 장소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밤늦은 시간에 인터넷 접속을 자제하도록 부모님의 각별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오동재.정신과 전문의 (http://www.n-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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