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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랫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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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설국열차’(2013)의 수직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한 ‘더 플랫폼’은 ‘시스템’을 향해 직설을 날린다. 극한 생존의 수직 감옥. 가운데 사각형의 구멍이 있고, 그 사이를 거대한 식탁이 수직으로 이동한다. 위 레벨 사람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먼저 먹는 사람들의 폭식으로 아래 레벨 사람들은 굶어야 한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탐욕의 시스템. ‘더 플랫폼’은 정치적 우화이며, 극단적 비유이며 도덕적 경고이다.

그영화이장면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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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메시지를 살짝 걷어낸다면, ‘더 플랫폼’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엔 수많은 룰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곳에 들어올 때 소지품 한 가지씩이 허락된다는 것. 책, 칼, 반려견, 밧줄. 십자가, 휠체어…. 수감자들은 다양한 선택을 했는데, 누군가는 돈다발을 가지고 들어왔다. 스치듯 잠깐 등장하지만 이 장면은 묘한 여운을 준다. 폐쇄적 공간 속에서 온종일 돈을 만지고 있는 백발의 광인. 하지만 생존을 위해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결국 지폐는 낙엽처럼 흩날릴 뿐이다. 연대를 거부하고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일그러진 내면이다.

이 풍경은 현재 상황과 묘하게 공명한다. 생존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와 시스템의 회복이라는 것. 적자생존과 자본의 논리는 파국으로 이어진다는 것. 코로나 시대에 ‘더 플랫폼’만큼 적절한 영화도 없을 것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